윤석열 대통령이 인간의 자유 확대에 기여하면서도 개인과 사회에 위험이 되지 않는 ‘정의롭고 공정한 디지털 사회’를 구현하는 데 대한민국이 앞장서겠다고 21일 선언했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디지털 규범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통용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대에서 열린 ‘디지털 비전 포럼’에 참석해 이런 내용이 담긴 기조연설을 했다. 특히 미래 디지털 사회의 기본질서 및 원칙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조만간 디지털 권리장전 전문을 공개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에 동참을 제안할 계획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보장 △디지털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기회의 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 △자율과 창의 기반의 디지털 혁신 촉진 △인류 후생의 증진 등 5개 원칙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원칙은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디지털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되고,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원칙은 디지털 자산 권리관계 및 보상체계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누구나 디지털 관련 경쟁과 혁신의 기회를 공정하게 받아야 한다”며 “디지털 데이터와 정보 개발은 그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하고, 투입되는 투자와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체계가 작동돼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 원칙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AI 및 디지털의 오남용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 확산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며 “또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가 위협받고, 결국 우리 미래 세대의 삶이 위협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또 디지털 혁신을 이어가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기술이 인류 공동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윤 대통령이 디지털 규범 정립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룰 세팅에 앞장서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표준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관련 규범 제정을 선도한 나라들이 이후 자동차산업을 쥐락펴락했듯,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규범 논의를 주도한 국가들이 해당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한국의 KAIST, 정보통신기획평가원,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는 뉴욕대와 ‘AI·디지털 비즈니스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AI·디지털 분야의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사업화를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AI와 디지털은 그 자체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다른 기술이나 산업과 결합해 맞춤형 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며 “양국의 연구자와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을 이루고 글로벌로 함께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