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옛 소련 국가들이 유럽의 새로운 천연가스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국가가 한때 유럽 가스 공급량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러시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공급원을 찾으면서 콩고 연안에서 아제르바이잔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에너지 세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유럽 에너지회사들은 아프리카 알제리와 콩고, 소련에서 독립한 유럽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천연가스를 확보하고 있다.
이탈리아 에너지회사 에니는 최근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약 800㎞ 남동쪽에 있는 비르레바 지역에서 수십 개 유정을 시추해 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한때 알제리는 이탈리아에 가스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였으나 최근 수년간 러시아에 밀렸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알제리가 다시 유럽의 가스 공급처로 부상했다. 올해 알제리는 천연가스 1000억㎥를 유럽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는 전쟁 전인 2021년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 양의 약 65%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알제리산 가스를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오스트리아, 독일 등 중부유럽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에니는 콩고에서도 천연가스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에니는 수십 년간 콩고 해상 유전에서 석유를 캐낸 뒤 여분의 천연가스를 해저 저장소에 보관해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천연가스 수요가 치솟자 에니 경영진은 이 천연가스를 액화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아제르바이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BP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카스피해에서 가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샤 데니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약 100㎞ 동쪽에 있는 ACG 유전에서 가스를 추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100억㎥인 아제르바이잔의 가스 생산량을 2027년까지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에너지 지정학을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천연가스 수출을 위해 유럽 대신 중국·인도와 손잡았다. 대신 유럽은 미국, 아프리카, 옛 소련권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전쟁 전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수출 지역은 유럽이었다. 러시아 석유의 45%, 천연가스 대부분이 유럽연합(EU)에 팔렸다. EU 역시 전체 가스 수입량의 45%를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지난해 유럽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전년 대비 144.3% 늘렸다. 모자란 부분은 노르웨이(8.5%)와 알제리(15.7%), 아제르바이잔(17.6%) 등에서 수입해 메웠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