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만 높으면 OK"…고수익 회사채 싹쓸이 나선 ‘채권 개미’

입력 2023-09-20 15:07
이 기사는 09월 20일 15:0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채권 개미’들의 선호 상품이 국채에서 회사채로 전환되고 있다.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한 '반(反)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회사채나 BBB급 비우량 회사채 등에 개인투자자의 매수세가 몰리고 있는 분위기다. 기존 인기 상품인 국채뿐 아니라 고수익을 누릴 수 있는 회사채의 투자 매력이 커지고 있다는 게 채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회사채'에 꽂힌 개인투자자들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이날까지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채권은 회사채(2조3469억원)로 집계됐다. 국채(2조1503억원)와 기타금융채(1조7215억원)의 순매수액을 뛰어넘었다. 반면 상반기에는 국채 순매수액(7조418억원)이 회사채 순매수액(4조8535억원)보다 2조원 넘게 더 많았다.

신용등급 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달린 BBB급(BBB-~BBB+) 비우량 회사채도 채권 개미의 힘으로 ‘완판’에 성공했다. 에스엘엘중앙은 지난 19일 5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1년물 200억원에 330억원이, 2년물 300억원에 350억원의 등 총 680억원의 주문이 접수됐다.

당초 업계에서는 에스엘엘중앙 회사채의 흥행 여부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데다 신용등급 전망도 하향 조정된 탓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3일 에스엘엘중앙의 신용등급 전망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내렸다. 부정적 신용등급 전망이 달린 회사채는 투자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게 일반적이다.

신용도 하락 우려 속에서 회사채 완판에 성공한 건 채권 개미들의 매수세가 몰린 덕분이다. 총 주문액 680억원 가운데 410억원이 개인투자자를 위한 증권사 매수 주문으로 집계됐다. 최대 연 8%의 희망금리를 제시하면서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5일 발행을 마무리한 삼척블루파워 회사채에서도 개인투자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강원 삼척 지역에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탄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설립된 삼척블루파워는 자금조달을 위해 매년 회사채 시장을 찾았다. 발전소 건설재원 중 1조원을 회사채로 조달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2019년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6개 증권사와 1조원 규모의 총액인수 확약을 맺기도 했다.

문제는 반 ESG 이슈로 연기금 등 주요 금융기관이 투자를 꺼리면서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었다는 점이다. 삼척블루파워는 2021년부터 네 차례 연속 미매각을 피하지 못했다. 매번 추가 청약에서도 별다른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인수계약을 맺은 주관사단이 미매각 물량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추가 청약에서 개인투자자를 위한 증권사 주문이 대거 접수되면서 미매각 물량을 50억원까지 줄였다. 연 7.402%의 고금리가 책정되면서 개인투자자용 물량을 선점하기 위한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투자 매력 확대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증권도 리테일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채권이다. 오는 22일 발행되는 KDB생명 후순위채에서도 채권 개미들의 매수세가 돋보였다. 당초 재무건전성 악화 등 걸림돌이 많은 데다 신용등급이 A+급으로 낮아 흥행 우려가 컸다. 하지만 연 7%의 금리를 제시하자 개인투자자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1200억원어치 후순위채 발행에 성공했다.

국고채 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금리가 덩달아 뛰면서 투자 매력이 높아진 게 채권 개미들이 몰린 배경이다. 지난 20일 기준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연 3.952%로, 4.0%에 육박한 상태다. 채권 투자 경험이 쌓인 개인투자자들이 은행 예금보다 고금리 회사채를 매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도 반영됐다.

다만 고수익만 노리는 '묻지마 회사채 투자’는 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당장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더라도 건설채 등 돌발 변수가 많은 회사채는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대형 증권사 채권 발행 담당자는 “증시 불확실성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회사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특히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루 갖춘 상품은 나오자마자 완판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