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한 재개발 조합장 K씨는 자신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너무 많아 업무를 처리하기가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조합장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고소와 고발을 당하거나 소송에 휘말리는 어려움을 겪는 게 다반사다. 재개발·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은 조합원 총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총회를 거치기 전까지 실무는 조합장과 조합 임원이 조합원을 대표해 처리한다. 수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을 이끄는 조합장을 하고 싶어 하는 조합원도 많다. 실제로 조합장이 얼마나 많은 고소와 고발을 당하는지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A 조합장은 조합 상근이사, 조합장 직무대행자를 거쳐 조합원 총회에서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A 조합장이 직무대행자 시절 조합원 총회를 열려고 했더니 해임된 전임 조합장이 조합 통장을 가지고 가 버린 것 아닌가. 조합 통장에 예금돼 있는 사업비를 사용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 하는 수 없이 A 조합장은 자기 개인 통장으로 정비업체로부터 대여금을 받아 총회를 무사히 개최할 수 있었다. 이후 A 조합장은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 조합원 총회 없이 자금을 차입하고 개인 통장으로 돈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이 수사한 결과 조합이 과거 조합원 총회에서 자금 차입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고 조합장 개인 통장으로 대여금을 받은 것도 정당한 행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A 조합장은 무혐의로 처리됐다.
B 조합장은 용역업체 선정 때 필요한 배점표를 작성하고 조합원 총회를 열어 적법하게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얼마 뒤 B 조합장은 경매방해죄로 고소당했다. 특정 업체에 유리한 배점표를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B 조합장을 불송치했다.
C 조합장은 코로나19로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기 어려워지자 버스를 이용해 ‘드라이브 스루’ 총회를 열었다. 이후 C 조합장은 버스 수를 부풀려 대여 계약을 체결했다며 업무상배임죄로 고소당했다. 경찰 수사 결과 실제 동원된 버스 수와 계약서상 수가 일치했고, 결국 버스 수를 잘못 센 고소인의 실수가 빚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조합 임원들은 고소와 고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민사소송을 당하며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한다. 해임된 전 조합장 D와 전 감사 E를 비롯한 조합원이 조합이 설립되기 전인 추진위원회 시절 자신들이 직접 운영자금을 지출했다며 조합에 1억원이 넘는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D와 E가 실제로 그 비용을 사비로 부담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를 기반으로 원고들이 청구한 돈 중 10분의 1만 인정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D와 E는 항소를 포기했다.
정비사업 조합장에 대해서는 늘 뒷말이 무성하다. 워낙 규모가 큰 건설사업이기도 하고 실제 범죄행위에 연루돼 형사 처벌받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합장이나 조합 임원으로 선출되길 희망하는 조합원이 많다. 수백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고 수천억원의 사업을 시행하는 법인 대표자로서 짊어진 무게만큼 각종 의무가 큰 게 현실이다. 끊임없는 소송에 시달리며 운이 없으면 형사 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미리 알아두면 좋다.
고형석 법률사무소 아이콘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