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자 조각가인 안젤름 키퍼(77·사진)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현대미술의 거장, 신(新)표현주의의 선구자, 루브르가 찍은 거장…. 마지막 별명은 프랑스 입체주의 거장 조르주 브라크에 이어 생존작가 중 두 번째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을 영구 설치한 2007년 갖게 됐다. 이후 키퍼는 어느 누가 선정하든 현대미술 ‘최고수’ 중 한 명으로 항상 꼽히는 인물이 됐다.
그런 키퍼의 작품이 처음 ‘한국 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신작 16점을 포함해 모두 17점이 한국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키퍼가 한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이하게도 첫 번째 개인전 장소로 서울이 아니라 대전(헤레디움 미술관)을 택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키퍼가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3권짜리 시집 <가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이다. 키퍼는 이 시집을 달달 외울 정도로 ‘릴케 마니아’라고 한다. 그래서 몇몇 작품 옆에는 시구절을 옮겨 적었고, 다른 작품에는 그가 릴케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었다.
아름다운 시 구절과 달리 키퍼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폐허’다.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구 문명을 꾸준히 그렸다. 그의 작품에 있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무너지거나 망가진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키퍼가 폐허에 꽂힌 이유가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떨어져 집이 박살난 1945년 어느 날 독일에서 태어났다. 탄생과 동시에 폐허를 경험한 것이다. 이후 키퍼는 당시 독일에선 금기어나 마찬가지인 나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내는 데 골몰했다.
이번 한국 전시회의 주제도 폐허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담은 작품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 그림은 죽음이 아닌 ‘흙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건물 그림은 ‘근처에서 방황하는 이에겐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키퍼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금부터 납, 모래, 나무, 흙까지 다양한 재료를 캔버스 위에 쌓아 입체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회화라기보다 조각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1층 벽면 한가운데에 설치된 대형 작품이 그렇다. 양동이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담았는데, 양동이와 낙엽을 물감으로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들어 캔버스 위에 붙였다.
헤레디움이 첫 전시로 키퍼를 콕 집은 것도, 키퍼가 그 제안을 넙죽 받은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서로 닮은 구석이 있어서다. 헤레디움 건물의 첫 주인은 1922년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대전지부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담긴 건물을 대전의 청년문화재단인 씨엔씨티문화재단이 미술관으로 단장했다. 그래서 전쟁의 상처를 예술로 보듬어온 키퍼에게 “첫 전시의 주인공이 돼 달라”고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그게 통했다. 키퍼는 서울에 있는 대형 갤러리들의 요청을 모두 물리치고 헤레디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현대미술 거장’의 첫 한국 미술관 나들이 장소는 서울이 아닌 대전이 됐다.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키퍼와 헤레디움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거의 비슷하다”며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헤레디움 건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대전행 열차값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헤레디움의 천장 구조물은 1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전시는 2024년 1월 31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