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6% 증가했다. 그러나 국민총소득(GNI)은 0.7% 감소했다. 나라 경제는 성장했는데 국민 손에 들어온 돈은 줄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886달러(약 4248만원)였다. 4인 가족 평균 소득이 1억7000만원이라는 얘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다. 통계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국민소득 통계에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반도체와 석유 가격이 의미하는 것GDP와 GNI가 엇갈리는 이유부터 알아보자.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일정 기간 새롭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를 합산한 것이다. GDP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지역’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는 한국 GDP에 포함되지만, 한국인이 외국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는 그 나라 GDP로 잡힌다.
GNI는 한 나라의 국민이 일정 기간 벌어들인 임금, 이자, 배당 등의 소득을 합친 것이다. ‘지역’이 아니라 ‘국적’을 기준으로 한다. GNI에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얻은 소득은 빠지고, 한국인이 외국에서 얻은 소득은 들어간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GNI=GDP+국외 수취 요소소득-국외 지급 요소소득’이 된다.
명목 GNI를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GNI로 환산할 때는 한 가지 변수를 더 고려해야 한다. 교역조건 변화다. 예를 들어 한국이 반도체 한 개를 수출해 번 돈으로 원유 1배럴을 수입해 온다고 하자. 다음 해 반도체 수출이 두 배가 됐으나 반도체 가격은 그대로이고, 원유 가격만 두 배로 올랐다고 치자. 그러면 반도체 두 개를 팔고도 원유는 똑같이 1배럴밖에 못 사온다. GDP는 증가했지만, 실질 구매력은 그대로다. 만약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면 실질 구매력은 감소하게 된다.
이렇게 수출품 대비 수입품의 상대 가격이 오르면 GDP는 증가해도 GNI는 감소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지표로 나타난 경제성장률과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이유GNI는 명칭은 ‘국민총소득’이지만, 실제 가계 소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에서 말하는 국민에는 국민 개인뿐 아니라 기업·정부 등 나라 안의 모든 경제주체가 포함된다.
기업이 얻은 이윤과 정부가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거둔 세금도 국민소득에 들어간다. 국민 개개인 입장에선 세금을 내는 만큼 소득이 줄어들지만, 나라 경제 차원에서는 세금이 국민소득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니 통계상 국민소득과 실제 국민이 손에 쥐는 소득 사이에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국민 실소득에 더 가까운 지표는 GNI가 아니라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이다. PGDI는 GNI와 달리 기업과 정부를 제외하고 가계가 얻은 소득만을 대상으로 한다. 작년 PGDI는 1만8194달러로, 약 2350만원이었다.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9400만원으로 GNI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GNI에서 PGDI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60%를 넘었으나 최근에는 55%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라 전체에서 창출된 소득 중 가계에 돌아가는 몫이 줄었다는 의미다. 지표 대비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다. 소득 늘었지만 피곤한 한국GDP, GNI와 체감 경기에 차이가 생기는 배경에는 국민소득 통계만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질에 관한 문제도 있다. 비슷한 소득 수준에서 비교했을 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근로 시간이 길고, 소득 불평등이 큰 반면 사회복지 인프라는 부족하다.
한국 근로자의 지난해 연간 근로 시간은 1904시간이었다. 주요 7개국(G7)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한 해를 기준으로 근로 시간이 한국보다 길었던 나라는 일본(1965시간)밖에 없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1년 기준 15.1%였다. G7 중 이 비율이 한국보다 높았던 나라는 미국뿐이다.
경제학자들은 GDP를 일컬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국민소득 통계를 개발한 사이먼 쿠즈네츠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나라 경제 상황과 전반적인 국민 생활 수준을 보여주기에 GDP만큼 유용한 지표는 없다. 그러나 체감 경기와 소득 분배, 삶의 질까지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