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한국 ‘키맨’들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쓱닷컴, 교보생명, 버거킹, 락앤락 등 주요 포트폴리오 회수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어피너티 내에서 기존 한국 투자팀의 색채를 빼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존 투자에 대한 투자금 회수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어피너티는 올해 박영택 회장, 이철주 부회장, 이상훈 한국총괄까지 한국 창업 파트너가 줄줄이 회사를 떠나면서 재정비 절차에 들어갔다. 어피너티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어피너티는 창업 때부터 박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계 파트너들이 투자를 총괄하고 공동창업자인 K.Y.탕이 출자자(LP) 관리를 맡는 투트랙으로 운영됐다”며 “최근 K.Y.탕이 주도해 중국계 파트너들에 힘이 더 실어주면서 한국 인사들이 잇따라 밀려난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 파트너들의 이탈로 이들이 인수하거나 관리한 포트폴리오의 향후 전략에도 영향이 있을지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상훈 전 총괄 주도로 2018년 어피너티가 글로벌 투자회사인 BRV와 컨소시엄을 통해 총 1조원을 투입한 쓱닷컴이 대표적이다. 기업공개(IPO) 등 투자 회수를 약속한 기한이 도래하지만 신세계그룹과 가교 역할을 맡아온 인사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논의에 차질을 겪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어피너티와 쓱닷컴은 주주 간 계약을 통해 내년부터 쓱닷컴 IPO를 통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되돌려주기로 했다. 주주 간 계약에 따르면 쓱닷컴이 2024년 4월 30일까지 △2023년 거래액(GMV) 5조1600억원 이상을 달성하고 △IPO위원회가 선정한 복수 IB로부터 IPO 가능 의견을 받으면 FI의 풋옵션은 면제된다. 현재 쓱닷컴은 GMV 조건과 IPO 의견 모두를 충족해 풋옵션 부담은 줄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IPO를 진행할 수 있는 주도권은 여전히 FI가 쥔 상황이다. FI 입장에선 내년 상장에 나서려면 이마트 및 신세계그룹의 후방 지원을 통해 쓱닷컴의 외형을 키우는 게 절실한 상황이다. 풋옵션 부담에서 벗어난 신세계그룹의 입장은 다소 다르다. 또 다른 e커머스 자회사인 이베이코리아 정상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데다 유통업 전반의 부진이 이어지는 만큼 단기적인 숫자 부양보다 중장기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FI들은 이마트에 쓱닷컴으로 단가가 높은 가전제품 등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등 GMV를 단기간 가시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칠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트 측은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까진 한국 파트너들과 신세계그룹 간 의사소통이 활발해 큰 갈등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한국팀이 와해되면 상장을 촉구하는 입김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한국 파트너들이 단행해온 주요 거래인 교보생명과 버거킹, 락앤락 등 기존 포트폴리오 회수 전략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어피너티는 2012년 교보생명의 2대 주주로 합류한 뒤 2018년 “약속한 투자 회수를 지키지 않았다”며 신창재 회장을 상대로 주식을 되사라는 풋옵션을 행사했다. 신 회장이 이에 불복하자 국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내부적으론 당사자가 이탈한 만큼 11년 이상 ‘아픈 손가락’이 된 교보생명 건을 매듭짓기 위해 별도 합의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수 이후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한 락앤락과 지난해 매각에 실패한 버거킹의 ‘파이어 세일’ 가능성도 시장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차준호/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