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필수 원료인 동박을 생산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미국에 연간 생산 3만t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는 동시에 테슬라와 현지 진출한 한국 전기차 업체 등에 공급 물량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 12일 미국 델라웨어주에 현지 법인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는 통상 2주 정도 걸리는 현지 법인 설립 작업이 끝나는 대로 공장 건설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 회사는 미국 현지 공장 부지 후보군으로 3~4개 주(州)를 놓고 고심 중이다. 후보 지역은 미시간을 비롯해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등이다. 미국과 한국 완성차 업체 공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공장 부지 선정에서 세제 혜택 등 미국 주 정부가 제시하는 인센티브 등을 고려해 관련 협상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회사 측은 연내 부지를 확정하고 내년 초 착공해 공장 준공 시기를 최대한 앞당긴다는 목표다. 공장 건설 등에 투입하는 초기 투자액은 7000억~8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공장에서는 고급 제품인 하이엔드 동박만 생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2차전지에 들어가는 동박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 亞·유럽 이어 북미에도 '동박 공급망' 구축
주행 긴 美, 고용량 배터리 수요↑…고급 하이엔드 동박 생산키로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 두 곳에 동박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북 익산공장에서 연 2만t,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연 4만t 등 총 연 6만t의 동박을 생산하고 있다.
글로벌 2차전지용 동박 시장은 2025년 75만t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급성장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규모가 정체되면 시장 지배력을 곧바로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경쟁 업체들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점도 증설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동박 시장 1위인 SK넥실리스는 말레이시아 공장(연산 5만7000t)과 폴란드 공장(연산 5만7000t)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이에 맞춰 글로벌 시장 4위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량을 연산 2만t가량 더 늘리고, 스페인에 5600억원을 투자해 연 3만t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특히 이번에 미국에 첫 공장을 지어 북미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있지만, 이와 별개로 주요 배터리사 및 완성차 회사의 미국 진출 요구가 많았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북미 지역에만 공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연 6만t인 동박 생산 규모를 2028년 24만t까지 늘리겠다고 최근 밝혔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미국 공장은 부지가 확정되면, 우선 스페인 공장 규모(연산 3만t)와 비슷한 덩치로 설립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증설을 통해 공장 규모를 더 늘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공장에선 고급 제품인 하이엔드 동박만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엔드 동박은 10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정도 두께의 범용 제품과 달리 6㎛ 이하의 두께로 얇으면서도 강도가 강하고 잘 깨지지 않는다. 음극재를 잘 품을 수 있어 배터리 용량과 수명도 더 늘릴 수 있다.
북미 시장은 주행거리가 길어 하이엔드 동박 수요가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SNE리서치는 지난해 1만t 수준이던 미국 하이엔드 동박 시장이 2026년 10만t으로 10배 커진 뒤 2030년엔 34만t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북미 전기차 시장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한 데다 IRA 수혜를 예상하는 한국 배터리 제조사의 투자도 계속 몰리고 있다”며 “이번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미국 공장 건설은 북미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