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대형 마트의 부산 모 지점에서 노동조합 지부장이 동료를 상대로 '집단 내 괴롭힘'을 저질렀다가 회사로부터 징계 조치를 당한 사실이 17일 밝혀졌다. 조합원을 보호해야 할 노조 간부가 되레 앞장서 괴롭힘을 저지른 것이다. 이후 회사를 상대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징계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노위는 기각했다.
노조 조합원이 회사 내부 직급은 아닌 만큼 같은 직원끼리의 괴롭힘으로 볼 수 있지만, 부산지노위는 노조 지부장이 평소 "내가 점장과 동급"이라며 위세를 과시한 점을 들어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인 '관계의 우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조합원 보호는 커녕...이름 앞에 '개'자 붙이고 낄낄한 대형마트 부산 모 지점에서 근무하는 캐셔(계산원) A씨는 올해 1월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조 지부장 B와 그 무리 3명으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무시, 폭언을 받았다"며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냈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게 해당 지점의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지부장 B씨였기 때문이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된 회사의 조사 서면과 증거 자료에 따르면, B씨는 A씨의 성 대신 '개'자를 붙여 A씨를 '개OO'라고 부르면서 수년간 괴롭혔고, B씨 외의 다른 3명도 괴롭힘에 가담했다.
이런 행동은 새로 들어온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계속됐다. 다른 동료들은 "(B 무리가) 똘똘 뭉쳐서 정보도 자기들만 공유하고 따돌려서 안타까웠는데, A가 어떻게 버틸까 싶었다" "휴게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A의 휴식을 방해하길래 A에게 '참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B씨가 평소 동료들에게 '나는 점장과 동급'이라고 과시했고, 자신의 지시에 따라 A씨를 따돌리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B씨 무리들의 괴롭힘은 업무에서도 이어졌다. A씨와 같은 조로 계산대 작업에 투입되면 통화를 하는 등 수시로 계산대를 이탈해 A씨의 업무를 가중했다.
특히 B씨는 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통화를 하면서 계산대를 이탈해 고객들의 컴플레인이 잦았다는 동료들의 증언도 나왔다. "교대시간이 돼도 A는 일하는데 자기들끼리 이야기만 나눴다" "사적 통화를 자주 했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B씨 무리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지만, 확인 가능한 1개월 동안 CCTV를 확인한 결과 이들의 행각은 사실로 밝혀졌다.
B씨 무리는 업무 전달 사항을 A씨만 빼놓고 돌린 사실도 드러났다. 또 B씨 무리 중 한명은 "A가 (자신들에게) 욕을 했다"며 매니저를 찾아가 면담하는 등 A를 모함했지만, CCTV 확인 결과 신빙성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결국 회사는 B씨에게 정직 6개월, 괴롭힘에 동참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각각 정직 3개월, 감봉 6개월과 전보, 감봉 3개월과 전보의 징계를 내렸다. B씨 무리는 조사 과정에서 "그런 적 없다"며 잡아뗐지만, 참다 못한 동료 10여명이 "개OO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수년째 들었다"며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지점장과 동급이야" 과시..."직장 내 우위 이용한 것"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7월 B씨 등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징계 및 부당전보 구제신청'에서 근로자들의 신청을 기각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지노위는 "B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정내렸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
지노위는 "B가 평소 동료들에게 '나는 점장과 동급'이라며 자신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고, 주변 직원들에게 'A에게 말 걸지 말라는 식으로 따돌림을 주도하는 등 평조합원인 피해자 A씨와의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지위의 우위'가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여러 명이 무리를 지어 괴롭혔다는 점에서 "관계의 우위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개OO'라고 부르거나 계산대 업무를 떠넘기거나 모함하는 등의 행위도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겨'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지노위는 "피해자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진술하고 있고, 다수 참고인들도 이를 증언하고 있다"며 "설령 괴롭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회사 취업규칙에 따른 회사 질서 문란, 조직질서 저해 행위에는 해당한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노조 간부 등이 괴롭힘을 저지른 경우, 회사 입장에서는 자칫 노사 갈등이 일어날까봐 소극적으로 대응해 되레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조사로 증거를 남기는 등 일반적인 괴롭힘 사건보다 훨씬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과반수 노조 등 노동조합에게 힘이 있을수록 조합원을 보호해야 할 단체의 간부가 오히려 괴롭힘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권리의식 신장으로 최근 직장내괴롭힘 신고가 부쩍 많아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 문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권력을 통한 괴롭힘 문제도 많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