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첫날인 14일(현지시간) 25% 폭등하며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날 나스닥에서 ARM은 주당 56.10달러에 처음 거래된 뒤 공모가(51달러)보다 24.68% 오른 63.59달러로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652억4800만달러로, 한화로는 약 86조7000억원이다. 한국의 SK하이닉스(14일 기준 시총 88조9619억원)에 근접하는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ARM 최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이번 기업공개(IPO)로 48억7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시장에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위워크 등 최근의 투자 실패를 ‘한 방’에 만회했다고 평가했다. ○30여 년 전 제품에서도 로열티 수익
ARM은 올해 미국 IPO 시장의 최대어다. 2021년 10월 전기차 제조업체인 리비안이 137억달러 수준의 IPO에 성공한 이후 가장 크다.
투자자들이 모바일용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ARM을 넘어설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한 게 IPO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ARM은 거의 모든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한다. 로열티 수익도 상당하다. 출시한 지 30년이 지난 제품도 여전히 로열티를 받을 정도다. ARM의 로열티 수익은 지난해 16억8000만달러가량이었는데, 이 중 절반이 1990년부터 2012년 사이에 출시된 제품에서 나왔다.
이는 고평가 논란이 달아오를 만큼 ARM 주가에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 미국 CNBC는 ARM의 공모가와 주가수익비율(PER)을 기준으로 ARM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수준의 프리미엄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세계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PER이 108배인데, ARM의 PER은 104배로 산정됐다. ARM은 데이터센터 및 자동차용 반도체 설계의 성장을 반영하면 2025년까지 반도체 설계 시장 규모가 2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앞서 밝혔다.
반도체 관련 기업들도 ARM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애플, 구글, 엔비디아, 삼성, AMD, 인텔, 케이던스, 시놉시스, TSMC로 구성된 전략적 투자자 그룹에 7억3500만달러어치 주식을 매각했다고 ARM은 밝혔다. ○그간 투자 실패 만회한 손정의그동안 부진한 투자 성적을 내온 손 회장은 ARM 덕분에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은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인수했는데, 상장 첫날 시총이 인수가의 두 배를 웃돌았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 우버 등 기술기업의 초기 투자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최근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는 디디추싱과 쿠팡 등에 투자했다가 해당 기업 주가가 내려가면서 최근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회계연도엔 손실 규모가 320억달러였다.
손 회장은 이날 ARM 상장을 앞두고 CNBC와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AI의 열렬한 신봉자라고 칭하며 “혁신은 개인용컴퓨터(PC)에서 시작해 모바일 인터넷 그리고 이제는 AI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손 회장은 “인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었지만, AI는 앞으로 이를 뛰어넘을 것”이라며 “범용 인공지능(AGI) 단계가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신정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