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보다 믿을 만해"…유튜버 믿고 투자했다가 결국 [진영기의 찐개미 찐투자]

입력 2023-09-17 07:11
수정 2023-09-17 07:16

투자자들이 증권사 리포트보다 내가 믿는 유튜버의 한마디에 더 집중하고 환호한다. 바야흐로 '핀플루언서(finfluencer; finance+Influencer)'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유튜브, 블로그, 카카오톡에서 투자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하면서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잉하고 있다.

핀플루언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금융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쉽게 말해 주식 유튜버, 재테크 블로거 등이 핀플루언서에 해당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이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성장했다. 다만 일부 핀플루언서가 위법 논란에 휩싸이는 등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핀플루언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제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의 구독자 수는 279만명에 달한다. 이 채널은 유튜버 '슈카(본명 전석재)'가 운영하고 있다. 펀드매니저 출신인 슈카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경제, 금융 이슈를 쉽게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튜브 분석 업체 블링에 따르면 지난 15일 '슈카월드' 채널의 일일 조회수는 약 90만회에 달한다.

핀플루언서들은가상화폐 열풍·동학개미운동을 거치며 급성장했다. 자산 증식에 관심을 갖는 개인 투자자가 늘어난 덕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 수는 약 1424만명이었다.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주식 투자를 하는 셈이다. 2019년 말(619만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더 이상 제도권 증권사를 신뢰하지 않는 개인들도 핀플루언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특정 세력 또는 기업과 결탁해 편향적인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는 오인한 데 따은 것이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종목에 부정적인 의견이 제시되면 해당 자료를 발표한 증권사, 연구원을 상대로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금융투자업계는 제도권 증권사의 연구원은 컴플라이언스(법률 준수 의무) 적용 대상인만큼 사실에 기반해 투자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핀플루언서가 자신의 영향력을 범죄에 악용한 것이다. 지난 7월 '주식 단타 여신'으로 불렸던 핀플루언서 이모씨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피해자 7명으로부터 총 118억3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그는 "나는 초단타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라며 "손해를 볼 일이 없다"고 피해자를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 구독자 55만명을 보유한 '슈퍼개미' 김모씨는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씨는 2021년 6월부터 작년 6월까지 유튜브 방송서 다섯 개 종목에 대해 매수 추천을 하면서 선행매매를 일삼았다. 선행매매는 미리 매집한 특정 종목을 투자자들에게 추천해 해당 주식을 매수하게 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자신이 보유한 물량을 팔아 시세차익을 거두는 수법을 말한다.

2차전지주 투자 열풍을 이끌어온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작가도 최근 겸직 논란에 휩싸였다. 금양 홍보이사로 재직하던 시기 넥스테라투자일임에서 투자운용본부장직을 겸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자본시장법은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해 임직원 겸직을 제한하고 있다. 앞서 박 작가는 "운용본부장 업무와 기업홍보 업무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거쳤고, 병행(겸직)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핀플루언서를 무조건 추종하며 매매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는 개인 투자자의 주식 정보 접근성을 높여주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유튜브의 메시지가 특정 방향으로 편중돼 개인투자자의 투자의사결정을 왜곡시키는 부정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자격증을 만들어 핀플루언서들을 제도권에 편입하고 있다. 프랑스 금융당국인 금융시장청(AMF)은 2021년 'Responsible Influence Certificate'라는 이름의 자격을 도입했다. 핀플루언서의 영업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다.

핀플루언서가 추천한 종목의 주가 흐름을 추적해보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연구도 있다. 스위스금융연구소(SFI)는 4월 '핀플루언서들(Finfluencers)'이란 제목의 논문을 공개했다.
연구진은 핀플루언서의 영향력과 주식 수익률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의 주식 정보 공유 플랫폼 스탁트윗(Stocktwits)을 조사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절반 이상(56%)의 핀플루언서가 추천한 종목의 월평균 손실률은 2.3%를 기록했다. 또 연구진은 핀플루언서 가운데 28%만이 '숙련된(skilled)' 상태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숙련된 핀플루언서의 영향력은 그렇지 않은 핀플루언서에 비해 미약했다고 밝혔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