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고려해서 손익분기점은…"
개봉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문의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영화 산업의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내수만으로는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고, 해외 판매는 필수가 됐다. 칸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유명 감독의 작품,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개봉도 전에 100개국이 넘는 곳에서 판매가 이뤄져 이를 홍보로 내세우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한 국내 투자 배급사 수출 관계자는 "프랑스 언어권에 배급하는 한 회사랑만 계약해도 수출국은 100곳이 넘는다"며 "국가 수보다는 얼마에 수출하느냐가 중요한데, 계약 내용상 이를 공개하긴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가령 넷플릭스에 작품을 판매할 경우 "넷플릭스 서비스 지역이 190개국 정도 되는데,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팔면 '190개국에 판매됐다'고 할 수 있겠냐"는 것.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 국가에 팔았는지에 관심을 갖지만, 얼마에 팔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출, 회복 넘어 성장"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 수출액은 수출 총액은 7146만5380달러(한화 약 959억7700만원)로, 2021년 집계금액 대비 47.0% 증가했다. 그중 한국 영화 완성작 수출 금액은 총 7144만380달러(약 949억4400만원)로 전년 대비 66.0% 상승했는데, 이는 한국 영화 수출 최고 실적을 달성했던 2005년 7599만달러(1007억4000만원) 이후 최고 기록이다.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2004년 이후 2005년은 한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해외 필름마켓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470만달러(약 62억4600만원)에 판매돼 역대 최고 금액을 경신하며 화제가 됐다. 해외 판매 활성화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등의 작품은 국내 개봉도 전에 이미 제작비를 회수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팬데믹 기간 온라인으로만 개최되던 필름 마켓들이 대면 마켓으로 복귀하면서 수출 판로가 다시 확보됐고, 글로벌 OTT의 영향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하여 높아진 관심 또한 수출에 있어 호재로 작용했다는 게 영진위 측의 설명이다. 편당 평균 수출 단가도 상승했다. 2021년 4만9151달러(약 6500만원)에서 9만113달러(1억2000만원) 정도로 2배 가까이 올랐다.
수출 지역은 아시아가 48.2%의 비중을 차지하며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낮아지고 있다. 반면 '전 세계'를 포함한 기타 지역 계약금액이 늘었다. 영진위 측은 "극장이 아닌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는 OTT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극장 관람 요금의 상승, OTT 구독 인구 증가세의 정체,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증가 등의 외부 환경이 향후 '전 세계'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수출 전략 "그때그때 다릅니다"
지난 17일 폐막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는 '밀수' 염정아·박정민·고민시,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박서준·박보영 등 주요 배우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미 국내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의 주역들이 토론토까지 출국한 배경에는 북미 지역 수출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토론토영화제는 비경쟁 영화제이지만, 북미지역 최대 영화 축제로 한국 영화를 북미 관객들에게 알리는 장으로 알려졌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색다른 소재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올여름 극장가에서 호평받았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두 작품의 수출 전략은 전혀 달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에 앞서 전 세계 152개국 선판매를 시작으로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하와이 국제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글로벌 극장가의 높은 관심까지 입증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주연으로 활약한 이병헌을 비롯해 새로운 설정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해외 배급사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후문이다.
반면 '밀수'는 국내 흥행을 기반으로 작품성을 강조하며 해외 판매에 나섰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 명의 여성이 이끌어가는 영화에 우려를 보였지만 "작품에 자신이 있었기에 한국의 흥행 상황을 지켜본 후 제값을 받고 판 것으로 알고 있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구체적인 금액대를 밝히긴 힘들지만, 투자배급사인 NEW에서 '부산행' 다음으로 해외 판매로 재미를 본 케이스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해외 판매를 어떤 식으로 할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해외에서도 판매가 입증된 스타나 감독,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을 캐스팅하려는 것도 수출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면, 개봉 후 흥행 스코어를 보며 몸값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