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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골드만삭스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2009년 미국 잡지인 롤링스톤은 골드만삭스를 가리켜 '흡혈 오징어'라고 불렀습니다. 돈 냄새가 나면 어디든지 빨판을 들이대 피를 빨아간다는겁니다. 탐욕스러운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을 위해서 쓴 비유였지만,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돈 냄새 하나는 기가막히게 맡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골드만삭스는 다릅니다. 월가의 쟁쟁한 투자은행들 사이에서 유독 이익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다른 경쟁자들은 잘 나가는데, 골드만삭스는 실적도 망가지고 주가도 부진하고, CEO인 데이비드 솔로몬도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월가의 황제, 대체할 수 없는 1위 자리만 차지하던 골드만삭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요? 골드만 삭스의 화려했던 위상
투자은행으로서 골드만삭스의 위상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정재계에서 얼마나 활약했는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금융경찰로 불리는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전 뉴욕 연준 총재인 윌리엄 더들리, 로버트 카플란 전 댈러스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등이 모두 골드만삭스 출신입니다. 오죽하면 이 사람들이 한창 활동하던 2015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연준에는 골드만삭스 인사들이 너무 많다. 너무 편향되어있다고 기사를 쓸 정도였습니다. 미국 밖에서는 ECB 전 총재인 마리오 드라기,영국 중앙은행 사상 첫 외국인 총재였던 마크 카니도 골드만삭스 출신입니다.
금융 뿐만 아니라 정계에 대한 영향력도 대단했죠. 1960년대 헨리 파울러 전 재무장관을 비롯해 빌 클린턴 시절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 조지 부시 시절의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 트럼프 정부 재무장관이었던 스티브 므누신까지 모두 골드만삭스 출신이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 고문인 스티브 배넌, 트럼프 사단의 실세로 불렸던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미국 밖에서는 리시 수낙 영국 총리도 골드만삭스 출신입니다.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경제 정책을 주무른다는 의미에서 '거버먼트 삭스(goverment sachs)'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실적이나 외형면으로 볼 때도 골드만삭스는 항상 1위였습니다. 골드만삭스 CEO는 월스트리트 연봉 1위를 차지했고, 2000년대 골드만삭스의 ROE는 연간 40%를 웃돌아 경쟁사보다 2배나 높았습니다. 당시 골드만삭스의 임직원 수는 2만2000명정도로 모건스탠리나 메릴린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임직원 1인당 벌어들이는 돈이 경쟁사보다 두 배 씩은 많았고 그만큼 연봉도 비교할 수 없게 높았습니다. 월가의 모든 뱅커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었죠.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반 월가 시위가 커지고, 월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커지면서 골드만삭스는 돈만 밝히는 타락한 자본의 상징으로까지 비판받기도 했어요. 고객을 자기네가 시키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부르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빼앗아 올지에만 관심을 둔다든가, 일반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연봉을 챙기면서 돈에 대한 탐욕으로 금융위기를 촉발했다든가 하는 게 예전의 골드만삭스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각이었습니다.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골드만삭스그런데 지금 골드만삭스에 쏟아지는 비판은 예전과는 색깔이 사뭇 다릅니다. 예전에는 돈벌이에만 집중하는 모습, 너무 잘 나가는 것에 대한 견제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골드만삭스는 왜 이렇게 비틀대는거야? 돈 냄새 하나는 기가막히게 맡았는데, 왜 이제는 돈을 못 벌고 있는거지? 라는 의심어린 시선에 더 가깝습니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위기의 징후는 실적이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최근의 실적발표인 2분기에 순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60% 쪼그라들었습니다. 주당 순이익 매출 할 것 없이 모두 부진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경쟁자들도 같이 못했으면 골드만삭스의 부진도 이해가 될 법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JP모건의 순이익은 2분기에 67% 급증했고, 웰스파고는 순이익이 전년보다 60%, 뱅크오브아메리카도 20% 늘었거든요. 한 마디로 남들은 뛰어나가는데 골드만삭스만 폭삭 주저 앉은거죠.
올해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해 순이익 반토막, 주당순이익 반토막, ROE는 13%포인트나 깎여버린 10%대로 주저 앉았습니다. 이렇게 실적 부진이 이어지다보니까 직원들도 계속 내보냅니다. 올들어서만 전체 직원의 7%정도인 3500명가량을 잘랐어요. 지난해부터 누적으로 치면 4000명을 넘게 회사를 나갔습니다. 데이비드 솔로몬 CEO의 연봉도 지난해에 전년대비 30%나 깎여서 2500만달러로 떨어지면서 월가 CEO 연봉 랭킹에서 JP모건은 물론 BoA, 모건스탠리 등에도 모두 추월당했어요.
물론 변명은 있습니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기업공개(IPO)도 많이 안하고, 인수합병(M&A) 건수도 적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다른 월가 은행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가에서 보는 골드만삭스의 문제는 야심차게 진출했던 소비자 금융 부문에서 실패했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는 2016년 개인 소비자 금융부문을 강화하려고 설립자인 마커스 골드만의 이름을 딴 '마커스'라는 플랫폼을 출범합니다. 2000년 체이스 은행과 합병한 JP모건이 소매금융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골드만삭스도 소매금융 부문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어 2018년 데이비드 솔로몬 CEO가 취임하면서 가계 부문 대출을 많이 늘렸습니다. 2019년에는 애플과 손잡고 애플카드를 출시해 신용카드 사업을 늘렸고, 같은 해 대부 전문 업체인 유나이티드 캐피털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금리가 오르면서 이렇게 늘린 대출들에 부실이 쌓였다는겁니다. 가계 대출 부문을 빠르게 늘리려다보니 위험관리 노하우가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고객들의 연체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 골드만삭스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3%에 육박해 미국 대형 카드발급사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골드만삭스는 2021년에는 대손 충당금, 그러니까 손해에 대비해 미리 쌓아놓는 을 3억 5700만달러 쌓았는데, 지난해에는 7.6배가 넘는 27억 1500만달러를 적립했습니다. 돈을 쌓아둬야하다보니 순이익도 반토막 나면서 기록적으로 나빠진거죠. 지난 3년동안 골드만삭스가 소매금융 부문에서 입은 손해만 30억달러, 우리 돈으로 4조원에 가깝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매금융 부문에서 빠르게 손을 떼고 있습니다. 올 초에는 '마커스'를 통한 개인 대출을 중단하고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대부전문 업체 유나이티드 캐피털을 팔았고, 소매금융 확장을 위해 인수했던 그린스카이도 매각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애플과 함께 만든 애플카드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넘기려는 중입니다. 한 마디로 소매 부문의 실패를 인정하고 원래 잘하는 고액자산가 관리나 M&A IPO같은 딜 업무로 돌아가겠다는 겁니다.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는 골드만삭스
회사가 나쁘니까 내부에서 균열도 많이 생겨요. 뉴욕타임즈는 최근 기사에서 지난 6월에 골드만삭스의 전임이자 12년간 CEO를 맡았던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데이비드 솔로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골드만삭스 주가 하락으로 인해 1월부터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지분에서 5000만달러를 잃었다는 겁니다. 블랭크페인은 솔로몬에게 "내 인내심이 약해지고 있다"면서 회사에 복귀하겠다고까지 제안했는데, 솔로몬이 거절했다고 해요.
직원 이탈도 많이 생깁니다. 올 8월에만 골드만삭스 파트너 세 명이 사직서를 내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습니다. 임금 상승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31만2000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실적이 부진하다보니 전년 대비해서 25% 가까이 깎인거에요. 게다가 올해 2분기까지 실적 나오는 것 보니 올해도 임금이 오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성격나쁜 건 인정해도 돈 못 버는 건 인정 못하는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이직 행렬에 나서고 있습니다. 월가 헤드헌터들 사이에서는 "골드만삭스 고위직들은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데, 헤트헌터의 연락에 이렇게 호의적으로 반응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까지 있다"고 놀라워하는 수준입니다. 위기에 처한 솔로몬 CEO, 골드만 반전시킬 수 있을까
실적이 나쁘고 직원 연봉이 줄어드니까 솔로몬 CEO는 개인적인 공격까지 받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CEO말고 이 분 직업이 또 있습니다. 아마추어 DJ에요. DJ D-Sol. 2017년에 뉴욕타임즈가 DJ D SOL이라는 솔로몬의 부캐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내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바하마 휴양지에서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데이비드 솔로몬은 한 달에 한 번은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디제잉을 할 정도로 취미를 즐겁게 즐기고 있는데, 실적이 이 지경인데 디제잉 취미가 일에 너무 방해가 되는 것 아니냐는 뒷이야기가 흘러나오는거죠.
여기에 올해 2월에 골드만삭스가 어닝쇼크 수준의 실망스러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직원들도 대거 자르겠다고 말한 뒤에 솔로몬은 바하마로 향하는 제트기를 타고 베이커스 베이라는 호화 리조트로 향했거든요. 주주들은 속 터지는데 자기는 호화롭게 놀아서 문제냐? 물론 그것도 미웠을 수 있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솔로몬이 이 리조트에 투자하고 있거든요. 골드만삭스의 CEO를 하면서도 다른 기업의 운영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이해관계 충돌이 있을 수 있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골드만삭스의 공식 입장은 솔로몬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기업에 한자릿수 수백만달러. 즉 우리 돈으로 몇십억에서 몇백억원정도 투자하고 있을 뿐이며 연간 8시간 이하정도만 리조트 사업에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 직원이나 투자자 입장에선 곱게 보이지는 않을 해명입니다.
물론 솔로몬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없는건 아닙니다. 솔로몬이 CEO로 부임한 이후로 시계열을 넓혀보면 주가도 다른 기업이나 S&P500과 비교해 나쁘지 않았고, 5년만에 빠르게 접어버린 소매금융업 역시 조금 더 오래 지속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게다가 과거 골드만삭스도 실적의 부침이 있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제대로 극복해왔다며 이번에도 골드만삭스의 저력과 부활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데이비드 솔로몬 역시 본인의 실책을 인정하면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소매금융에서 빠르게 발을 빼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은 골드만삭스의 '태세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간 손해를 많이 보던 사업을 접었으니 실적이 개선되고, 골드만삭스가 소매금융부문 매각을 통해 얻은 현금으로 주주 환원을 늘릴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고 있습니다.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변화를 꾀하고있는 데이비드 솔로몬은 수렁에 빠진 자신과 골드만삭스를 구할 수 있을까요? 골드만삭스의 영광을 기억하는 투자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뉴욕 = 나수지 특파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