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 김지운 감독의 재회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거미집'이 베일을 벗었다.
영화 '거미집' 시사회 및 간담회가 14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됐다. 송강호는 "욕망의 카르텔 속에 허우적대는 우리 모든 사람의 상징이 담긴 영화"라고 소개하며 "제가 2번씩 보라 할 수 없지만, 전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대,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감독 김열(송강호 분)이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성공을 위해 결말을 새로 촬영하면서 벌어지는 혼돈을 담았다. 제작자와 감독, 이상과 현실, 그리고 스태프와 배우 등 인생의 축약판 같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일들은 대체 '영화가 무엇이길래?'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함께 각자 다른 목적과 욕망, 개성을 가진 이들 사이 벌어지는 다이내믹스로 역동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2005년의 '달콤한 인생',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은 김지운 감독의 세 번째 칸 영화제 초청작이자, '놈놈놈'이래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두 번째 동반 초청. 그리고, 송강호에게는 '괴물', '밀양', '놈놈놈', '박쥐', '기생충', '비상선언', '브로커'에 이은 8번째 초청작이다.
송강호는 김열에 대해 "개인적인 야망, 욕심으로 결말을 바꾸기 위해 촬영에 들어가는데, 바꾸고 싶었던 결말 자체도 김 감독 입장에선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장면이었다"며 "김 감독의 욕망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좌충우돌의 과정을 겪는데, 각 배우도 개인의 욕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모든 사람의 상징이 담긴 영화로 영화 속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 표정에도 정답이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거미집'이 한국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지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동안 보아온 영화적 문법, 형태를 떠나 '거미집'이 갖는 스타일이 주는 영화적인 멋이나 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지운 감독은 극 중 송강호가 연기한 김열 감독을 통해 자신의 영화 철학을 드러냈다.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까지는 배우들이 시나리오가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혹독하게 고생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했다"며 "저는 힘들게 어렵게 찍어야 그 에너지가 온전히 화면에 담기고 그걸 사람들이 느낀다 생각했다. 최근 '반칙왕', '장화홍련' 등을 다시 봤는데 혹독하게 영화를 찍었다는 걸 다시 느꼈다"고 영화 철학을 드러냈다.
또한 "영화 속에서도 '나만 살려고 이렇게 하는 거 아니다'고 하는데, 저도 배우들에게 혹독한 연기를 주문하면서 제 마음속에 떠올린 대사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놈놈놈'에서 대규모 폭발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생각한 거 보다 크게 불이 붙었다"며 "다들 불을 끄려 분주히 움직이는데, 이런데 저만 촬영 감독한테 '잘 찍혔지?'라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이게 광기인가' 스스로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거미집'을 느슨하게 찍은 건 아니다"고 웃으며 "나이를 먹으니 예민하게 안 굴어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캐스팅이 중요한 요소라는 걸 다시 느꼈는데, 스스로 다들 혹독하게 하더라. 알아서 잘했다"고 배우들을 칭찬했다.
'거미집'의 시작 역시 김지운 감독의 영화적인 고민에서 시작됐다. 김지운 감독은 "코로나19로 영화관도, 현장도 멈췄을 때 새로운 영화는 무엇인지 고민했다"며 "그러다 1970년대를 떠올렸고, 그 당시 감독님들은 지금보다 더 열악한 시기를 어떻게 돌파해갔는지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우려에 "제가 '조용한 가족'을 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거 같다"며 "그런 독특한, 새로움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기승전결이 아닌,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이 한 거 같은 신선함을 바라는 수용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김지운 감독은 또 "우리 영화는 하나의 티켓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리미엄이 있지 않나 싶다"고 강조해 폭소케 했다.
송강호 외에 박정수,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장영남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됐다.
극 중 라이징 스타 한유림 역을 맡은 정수정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1970년대 영화 속 특유의 말투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처음엔 깜짝 놀랐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김지운) 감독님 시범을 보고 확실히 감을 잡았다"며 "클립들을 찾아보면서 참고를 계속하고, 현장에서 다들 그렇게 연기가 되니 자연스럽게 말투가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1970년대 촬영 현장을 경험한 배우 박정수는 노장 배우 오여사 역을 맡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수는 "난 영화는 이게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1970년대엔 드라마만 찍어서 정확히 안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그땐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를 찍을 때도 안기부에서 나와서 검열을 했다. 그런 시기였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전 이번이 너무 재밌어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그냥 해서 그런거 같다"고 전하며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장화홍련'에 이어 '거미집'으로 김지운 감독과 재회한 임수정은 극 중 베테랑 배우 이민자를 맡아 혼란의 촬영장에서도 진지함을 보여준다. 임수정은 "이민자가 순종적인 인물에게서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 영화 속 '거미집'의 결말도 변화하는데, 저 역시 그런 변화가 맘에 들었다"며 "바뀐 결말도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사 대표 백회장 역의 장영남은 "저의 버킷 리스트를 이뤘다"고 촬영 현장을 추억했고, 바람둥이 톱스타 강호세 역의 오정세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작품이고, 1970년대의 새로운 말투 속 진지한 감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편 '거미집'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