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회만 세 번 먹은 적도"…공무원 단골 메뉴 된 수산물 [관가 포커스]

입력 2023-09-14 10:00
수정 2023-09-14 11:27

"와~ 줄 봐라, 줄. 엄청나게 기네."

지난 13일 오전 11시 45분께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15층에 있는 구내식당 앞은 점심을 먹으러 온 공무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비가 오는 날이라 청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식당 앞 줄은 평소보다 길게 늘어섰다.

입장을 기다리는 공무원들의 시선은 메뉴판으로 쏠렸다. ‘우리 수산물로 만든’ 봉골레 파스타와 오징어튀김, 꽃게탕, 고등어구이 등이 메뉴판을 꽉 채웠다. 식당 앞에 놓인 입간판엔 ‘믿고 이용하는 국내산 수산물’ ‘매주 수요일 수산물 중식 제공의 날’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부터 공무원들은 한 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 수산물로 만든 점심을 먹는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가 기획한 ‘수(水)요일엔 우리 수(水)산물 먹는 날’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침체한 국내 수산업계를 돕기 위한 취지다.


이처럼 요즘 관가에선 국내산 수산물 소비 촉진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 부처 수장부터 수산물 소비에 앞장서고 있다. 체코와 폴란드를 순방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일 서울 가락수산물 시장을 찾아 직접 꽃게를 골라 구매하고, 직원들과 회를 먹었다.

한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수산물 소비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맘때 꽃게와 대하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끓여 먹어도, 쪄 먹어도 참 좋습니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는 더 말할 것 없지요. 경치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드시면 광어회와 병어조림도 감칠맛이 날 겁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식 오찬과 만찬 일정을 수산물 메뉴로 꽉꽉 채우고 있다. 지난 4일엔 경남 거제시의 한 횟집에서 물회와 전복돌솥밥을 먹으며 간담회를 했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프리카 경제협력(KOAFEC) 장관회의에서도 기자단과 함께 아나고와 전어회, 물회 등을 즐겼다.


수산물 관리를 책임지는 해양수산부는 장·차관 모두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지난달부터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인천 종합어시장, 서울 수협 강서공판장, 전남 새우양식장·목포 청호시장 등 전국 곳곳의 수산물 시장을 찾아 수산물 소비를 독려하고 있다.

박성훈 해수부 차관은 지난달 통영 중앙전통시장과 부산 자갈치시장 및 공동어시장, 서울 가락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방문한 데 이어 이달 제주 한림수협 위판장과 넙치 어류양식장, 서울 강서수산시장을 방문했다.


각 부처 간부들도 수산물 소비에 앞장서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웬만하면 외부 식사 장소를 잡을 때 횟집을 주로 고른다”며 “장·차관이 도시락을 먹을 때도 회 도시락을 먹는 분위기라 아무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중앙부처 사무관은 “어쩌다 하는 회식도 수산물 위주로 하다 보니 1주일에 세 끼를 회만 먹은 적도 있다”며 “회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제는 질려서 못 먹겠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모든 중앙행정기관이 공격적인 수산물 소비에 나서고 있는 건 아니다. 대전에 있는 한 중앙 행정기관 사무관은 “우리는 수산물을 억지로 먹으려고 하진 않는 분위기”라며 “회식을 하더라도 예전처럼 돼지고기도 먹고 중식도 먹는다”고 설명했다.

당초 관측과 달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수산물 소비는 크게 위축되진 않는 분위기다. 지난 12일 해수부 등에 따르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직후인 8월 24∼29일 대형마트 3사의 수산물 매출이 8월 17∼23일 매출의 103%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방류 직후인 8월 25∼27일 노량진 소매점 매출도 8월 18∼20일 대비 14.6% 증가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