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2019년 11월 이후 약 3년10개월 만에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여파로 열차편이 취소된 승객들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발이 묶인 채 대체 표를 구하기 위해 수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화물열차 운행이 평소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면서 시멘트와 컨테이너 등의 물류는 첫날부터 차질을 빚었다. ○화물열차 운행률 평소 4분의 1철도노조는 14일 오전 9시부터 △수서~부산 구간 고속철도(KTX) 투입 △수서고속철도(SRT)와 KTX 통합 △4조 2교대 전면 시행 △월 임금 29만2000원 인상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나흘간 파업에 들어갔다. 이날 파업 참가율은 22.8%로 2019년 파업 당시(21.7%)와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서울역, 부산역 등 전국 주요 역을 이용하는 승객과 외국인 관광객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역 동쪽 매표소에선 시민 42명이 긴 줄을 섰다. 취소된 열차표를 교환하기 위해서다. 한 승객은 “왜 노조의 이득을 위해 승객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큰 소리로 항의하기도 했다.
철도파업의 여파는 퇴근길 지하철 혼잡으로 이어졌다.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선 지하철 보안관이 시민을 통제했다. 지하철 보안관은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가 달라. 세 명씩 줄을 맞춰서 서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날 서울역의 배차 간격은 기존 5분에서 7~8분으로 늘었다. 열차를 타지 못한 일부 시민은 15분 이상 승강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이날 기준 수도권 전철 운행률은 평상시 대비 83.0%, KTX는 76.4%에 그쳤다. 화물열차 운행률은 26.3%로 뚝 떨어졌다. 이로 인해 철도 운송 비중이 높은 시멘트 등은 물류에 큰 차질을 빚었다. 이날 충북 단양 지역의 한 시멘트 업체 출하량은 평상시 하루 6000t에서 1200t 정도로 80% 감소했다. 아직 재고량이 있는 상황이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피해가 클 것으로 업계는 우려했다. 부산신항역의 하루 운송량은 1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이지만 이날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파업 추석까지 연장되나 ‘촉각’노조는 정부·코레일과 교섭이 결렬될 경우 추석까지 파업을 연장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하지만 SRT와 KTX 통합, 수서행 KTX 도입 등 회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두고 파업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서행 KTX 도입 요구는 SR이 운영하는 SRT 노선이 지난 1일부터 경전·전라·동해선으로 확대되면서 경부선 주중 운행이 축소된 것을 이유로 삼았다. 철도노조는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는 승객의 불편이 커졌다”며 코레일이 서울~부산 구간에 늘린 KTX 3편성 가운데 1편성을 수서~부산 간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철도노조는 또 수서역 기반 SRT와 서울역 기반 KTX의 분리 운영을 철도 민영화 수순으로 보고,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KTX 편성이나 SR과 코레일의 통합 문제는 노사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국토교통부 입장이다. 국토부는 노조의 민영화 우려에 대해 “전혀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 7월 사학연금(31.5%), 기업은행(15%), 산업은행(12.5%) 등이 나눠 갖고 있던 SR 지분을 인수하면서 지분 59%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됐다. 2대주주는 41%를 보유한 코레일이다.
KTX와 SRT를 분리한 것은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던 국내 철도 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것인 만큼 노조 요구에 따라 정책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정부 정책 사항을 핵심 목적으로 하고 있어 (파업의) 정당성이 없다”며 “일체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안정훈/서기열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