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세대' 기업인 이종환 前 삼영화학그룹 회장 별세

입력 2023-09-13 19:04
수정 2023-09-14 00:36

플라스틱 양동이로 시작해 투명 랩, 초초고압 애자를 개발하고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을 설립한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9세.

192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고를 졸업한 뒤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2학년까지 다니고 학병으로 끌려갔다. 소련-만주 국경과 일본 오키나와를 오가며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다. 2019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전쟁터로 끌려가 남의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가 됐을 때의 막막함이란…. 영하 46도 혹한에 무거운 포신을 메고 고지를 오르내리고 부동자세로 야간 초병을 섰습니다. 꽁꽁 언 밥을 포크로 쪼개 먹는데 포크가 부러질 정도였어요”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고인은 광복 후 정미소 사업과 동대문시장 보따리 장사를 거쳐 플라스틱 제조업으로 눈을 돌렸다. 1958년 사출기 한 대로 삼영화학공업사를 차렸다. 플라스틱 바가지·컵·양동이를 만들어 팔았다. 부산 크라운하버호텔 등 계열사 이름에 붙어 있는 ‘크라운’이라는 기업 명칭은 당시 제품에 붙였던 왕관 모양 회사 로고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포장용 필름 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성공을 거두자 기술 개발을 통해 과자, 라면 포장지, 투명 포장지 등 고난도 합성 포장재 생산에 도전했다. 음식물을 싸는 투명 랩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삼영화학공업이었다.

사업 인생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철도청 침목 개량 사업에 뛰어들어 재래식 침목을 시멘트 철근으로 바꾸는 사업을 수주했다가 대기업에 뺏기기도 했고, 외환위기 직전엔 부도 위기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했다. 이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분야에 뛰어들면 권력과 부조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대 송전탑에 매다는 초초고압 애자 개발에 도전했다. 초초고압 애자는 비바람과 햇빛 속에서 수십t 전선 무게를 견뎌야 하기에 습기·염분·고열을 견디는 고도의 정밀함과 견고함이 요구된다. 이 회장이 세운 ‘고려애자’는 세계 네 번째로 초초고압 애자를 생산했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100% 국산화했다.

아흔을 바라보던 2009년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생산에도 뛰어들어 중공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빼앗긴 회사 국제전선의 한을 늦게나마 풀기 위해서였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삼영중공업 등 10여 개 회사를 거느린 삼영화학그룹으로 일군 ‘창업 1세대’ 기업인이었다.

고인은 자서전 책 제목을 ‘정도’라고 정했을 만큼 정경유착을 멀리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정부와의 소송도 불사했다.

2000년 6월 장학재단을 통한 재산의 사회 환원을 결정했고, 2002년 4월 말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지금까지 1조7000억원을 쾌척했다. 자산 규모로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이다. 2014년 600억원을 기부해 지은 서울대 관정도서관을 헌정하면서 서울대 사상 최대 기부액을 기록했다. 고인은 이런 공으로 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21년에는 제22회 4·19문화상을 수상했다. 또 중국 다롄에 대련삼영화학유한공사를 세워 중국의 전자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시민으로 추대됐다.

유족으론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이사 회장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30분.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