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도 '상친놈'('상견니'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탄탄한 팬덤을 가진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원작으로 했고, 차세대 청춘스타로 주목받은 배우 안효섭, 전여빈, 강훈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여기에 연출자인 김진원 감독 역시 '보통의 연애'부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참 좋은 시절', '그냥 사랑하는 사이', '나의 나라' 등의 작품을 통해 탄탄한 전개와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원작을 사랑했던 사람이 많았던 만큼 '너의 시간 속으로'가 공개된 후 이를 비교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부터 원작의 색깔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리메이크라는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해 고민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론을박은 펼쳐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잘해도 기본"이라는 리메이크였다. 김진원 감독은 "저 역시 원작의 팬이었기에 리메이크 소식을 듣고 '안 하면 안되나' 생각하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대본이 너무 좋았고, 원작에서 좋아해 주셨던 부분들을 갖고 가면서 우리만의 정체성이란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작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똑같이 가면 왜 리메이크하는 건가' 싶었어요. 그런 균형을 잡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다신 못하겠더라고요.(웃음) 특히 저희는 영상물이 원작인 작품이라. 고민이 됐던 부분들은 배우와 현장에 많이 의지했어요. 물론 저희의 방향성, 색깔과 엄청나게 많이 벗어나진 않았어요. 대본에 '파란색'으로 쓰여 있다면, 촬영하면서 '옅은 파랑', '짙은 파랑'이 되는 거죠. 그런 현장에서의 공기, 흐름에 따라가면서 '이게 우리 색깔이구나' 찾아갔어요."
'너의 시간 속으로'는 사랑했던 남자친구 연준(안효섭 분)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준희(전여빈 분)이 1년이 지난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하던 중 의문의 소포와 사진을 받고, 소포 속 워크맨과 함께 전달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콘셉트의 타임슬립 로맨스 드라마다. 30대인 준희가 25년 전, 자신과 동일한 외모의 10대 학생 민주의 몸에 빙의 되고, 이를 통해 연준과 동일한 외모의 시헌과 만난다는 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시간 여행을 거듭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고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부분까지 큰 전개 과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들을 연기하는 캐릭터의 변화 지점이 시청자들에게 다르게 와 닿을 것"이라고 김진원 감독은 차별점을 꼽았다.
일각에서 극 중 안효섭이 연기한 40대 시헌의 스타일링을 원작과 비교하며 "해석을 잘못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진원 감독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크게 반응이 올진 몰랐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미리 준비해왔다"면서 긴 답변을 했다.
"40대 시헌이 보여줘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고단함이었어요. 20년의 세월을 견뎌오면서 그 고통의 깊이감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죠. 시헌의 외모가 극 중 가장 극적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건 친구 인규(강훈 분)의 죽음 이후인데, 상실감으로 많은 걸 포기하고,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자포자기 심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40대 시헌과 30대 시헌이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주얼적으로 차이를 줬으면 했어요. 그래야 감정의 대비가 더 잘 보일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김진원 감독은 "안효섭 배우가 너무 잘생겨서, 어떻게 해도 세련되고 멋있더라"라며 "앞머리를 뒤로 넘기는 스타일링도 고려했지만, 너무 세련돼 보여 결국 가발을 씌웠다"고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어 "촬영할 때 '내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긴 했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타임 슬립만큼이나 파격적인 설정은 동성애 코드다. 시헌에게 빙의되기 전 연준은 재수학원에 함께 다니던 태하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원작에서는 동성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 화두를 던지며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설정됐다. 이 사고로 태하는 목숨을 잃고, 연준은 시헌의 영혼에 빙의된다.
김진원 감독은 "원작에서 극 중 인물들이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게 꼭 필요하고 설득력있는 설정인지 고민했다"며 "우리나라 자살율은 지금도 정말 높고, 이걸 글로벌 플랫폼에서 선보였을 때 어떻게 비춰질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굉장히 우발적이고, 자연적인 죽음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원작과 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태하 역엔 로운이 특별출연했다. 로운은 안효섭을 '절친'으로 알려졌는데, 김진원 감독은 "구조적으로 섬세하고 감정적으로도 교류가 편해야 할 거 같아 '너랑 친한 배우가 누가 있니?'라고 물었고, 즉석에서 로운 배우 얘기가 나왔다"며 "처음엔 제가 살짝 고민했는데, 작가님이 펄쩍 뛰며 '무슨 고민이냐. 바로 하라'고 하셔서 제안을 하게 됐다"고 캐스팅 후일담을 전했다.
"로운 배우는 출연료를 받지 않았어요. 대신 출연 조건으로 '안효섭 이름으로 밥차를 촬영장에 보내달라'였죠. 원작을 안 본 사람들에게는 동성애가 뜬금포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뺀 버전도 있는데, 이성의 사랑으로 할 경우 준희와 시헌의 애정과도 겹칠 거 같았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동성애 코드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싶었고, 기왕이면 많이 돋보였으면 했는데 (로운과 안효섭이) 잘 해줬어요. 물론 두 사람은 서로는 컷하고 나면 손사래를 쳤죠.(웃음) 두 사람이 애정을 갖고 할애를 해준 만큼 이 장면이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