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가 앞다퉈 외부 개발사의 게임 지식재산권(IP)을 배급하는 퍼블리싱(배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서브컬처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웹젠이 올해에만 일본 개발사 두 곳의 게임을 국내 출시하기로 했다. 하이브IM, 크래프톤 등 자금이 풍부한 게임사들은 퍼블리싱 계약과 지분 투자를 병행하면서 빠르게 판권을 보유한 IP의 수를 늘려가고 있다. ○웹젠, 일본 개발사와 잇따라 맞손
업계에 따르면 웹젠은 연내 일본 개발사가 만든 서브컬처 게임 2종을 국내 배급하기로 했다. 서브컬처는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그래픽이 특징인 수집 게임을 가리킨다. 웹젠이 올해 처음 내놓은 서브컬처 게임은 지난 7일 출시한 역할수행게임(RPG)인 ‘라그나돌: 사라진 야차공주’다. 일본 그람스가 2021년 개발한 게임을 웹젠이 국내 공급하는 형태다. 웹젠은 일본 에이밍이 개발해 지난해 11월 출시한 서브컬처 게임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싶어서!’도 연내 국내에 배급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웹젠이 일본 게임 2종의 퍼블리싱을 통해 서브컬처 시장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업체가 만든 게임을 배급하면 복잡한 개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른 사업화가 가능하다. 웹젠은 내년 자체 개발한 서브컬처 게임을 내놓는 게 목표다. 자체 서브컬처 게임 출시에 앞서 퍼블리싱 게임 2종이 시장을 탐색하는 정찰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적 개선을 빠르게 꾀할 수 있다는 것도 퍼블리싱 사업의 장점이다. 웹젠 매출은 2020년 2941억원에서 지난해 2421억원으로 감소세다. 뮤, R2 등 자체 IP 게임 매출이 점진적으로 줄고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외부에서 출시된 게임을 사업화하면 즉각적인 매출 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퍼블리싱 사업을 하면 자체 IP 게임 출시 이전까지 매출 추이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계약 수수료로 인해 영업이익률이 악화할 수 있는 건 부담”이라고 말했다. ○하이브IM, 퍼블리싱으로 체급 키워퍼블리싱 계약에 투자를 결합하는 게임사도 나오고 있다. 퍼블리싱 계약과 지분 투자를 병행해 단순 배급에 그치는 게 아니라 IP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하이브의 게임 자회사인 하이브IM은 국내 개발사인 아쿠아트리에 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아쿠아트리가 개발 중인 MMORPG ‘프로젝트A’(가칭)의 퍼블리싱 계약도 함께 체결했다. 아쿠아트리는 넷마블에서 ‘리니지2 레볼루션’을 개발한 박범진 전 넷마블네오 대표가 지난 6월 차린 스타트업이다.
하이브IM은 몸집을 빠르게 불리기 위해 퍼블리싱 계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게임 ‘별이되어라2’ 개발사인 프린트에 167억원을 쏟아 이 게임의 배급 권한을 확보했다. 2021년엔 신생 개발사 마코빌에 50억원을 투자하고 이 회사의 RPG 2종에 대한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다. 업계 일각에선 향후 이들 게임이 흥행하면 개발사의 지분을 하이브IM이 추가 인수해 협업 관계를 강화하는 전략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크래프톤도 개발사에 투자해 IP를 다수 확보하는 전략을 ‘스케일 업 더 크리에이티브’로 이름 짓고 올 들어 IP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2026년까지 게임 24종 출시가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 상반기 925억원을 들여 한국, 폴란드, 미국 등의 개발사 네 곳과 투자·퍼블리싱 병행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엔 넥슨과 저작권 소송을 벌이고 있는 아이언메이스와 손을 잡고 게임 ‘다크앤다커’의 모바일 게임 판권도 확보했다. 무단 도용 논란에 휘말리더라도 시장 경쟁력이 있는 IP를 확보하겠다는 강수를 던졌다.
퍼블리싱 계약과 병행한 투자가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도 나오고 있다. 위메이드는 2020년 이후 MMORPG 나이트크로우 개발사인 매드엔진에 400억원을 지분 투자했다. 위메이드가 지난 4월 출시한 이 게임이 흥행하면서 위메이드가 보유한 지분의 평가 가치는 여섯 배인 2400억원 수준으로 뛰었다. 카카오게임즈는 2018년 라이온하트스튜디오에 50억원을 투자한 뒤 배급한 이 회사 게임 ‘오딘: 발할라 라이징’이 흥행하자 지난해 1조2041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카카오게임즈가 유럽 법인과 함께 보유한 이 회사 지분율은 약 55%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