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가전의 핵심은 인공지능(AI)입니다. AI를 기반으로 가전부터 자동차까지 고객의 삶이 있는 모든 공간을 연결하게 되죠. 가사노동 해방에도 큰 역할을 할 겁니다.”
124년을 이어온 독일 가전기업 밀레의 라인하르트 진칸 회장(사진)은 가전의 미래를 이렇게 예측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23’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1899년 설립돼 4대째 내려오는 가족기업인 밀레는 프리미엄 가전의 대명사다. 진칸 회장은 밀레의 공동 회장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전의 미래 향방을 좌우할 트렌드로 AI를 꼽았다. 대다수 가정에 가전이 보급되며 포화 상태가 된 가전시장은 성장이 주춤한 상황인데, AI로 이런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구상이다. 밀레는 AI를 앞세운 가전을 선보이고 있다. 오븐에 장착된 카메라가 오븐 속 음식이 피자인지, 웨지감자인지, 생선인지 식별해 자동으로 요리하는 ‘스마트푸드 ID’가 대표적이다. 진칸 회장은 “2020년 처음 선보인 후 기술을 발전시켜 지금은 신선 피자와 냉동 피자도 구분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AI로 가전을 진단할 수도 있다. 진칸 회장은 “밀레의 가전제품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진단 앱이 고장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며 “대다수 서비스 기술자는 방문 출장을 통해 기계 결함을 확인하는데, AI가 이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고장도 예측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용자가 세탁기에 너무 많은 세제를 넣어 과도한 거품이 발생하면 AI가 이를 인지하고 고장을 막기 위해 세제를 적게 넣으라고 조언할 수 있다”고 했다. AI 진단은 세탁기를 시작으로 점차 다른 제품으로 확장할 전망이다.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 비결도 소개했다. 그는 프리미엄의 정의에 대해 “단순히 고가 제품이 아니다”며 “‘갖고 싶다’는 생각과 그 이상의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밀레는 고객이 항상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며 124년의 업력을 이어왔다”고 덧붙였다.
밀레는 기업 간 거래(B2B)를 중심으로 한국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을 앞세워 고급 아파트, 리조트, 호텔 건설 단계에 참여한다. 그는 “최근에는 마스터쿨 냉장고 등 밀레의 다양한 제품을 강원 양양의 럭셔리 리조트 설해원에 공급했다”며 “빌트인 가전은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보다 규모가 크고 변동성이 작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밀레는 진칸과 밀레 두 가문이 공동 경영하는 가족기업이다. 창업 이후 밀레 51%, 진칸 49%의 지분율 구도를 지켜오고 있다. 안정적인 가족경영은 밀레의 주요한 성장 비결로 꼽힌다. 진칸 회장은 “분기별 보고서를 보고 결정하지 않고, 훨씬 길게 세대 단위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