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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한 신한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
지난 칼럼에서 주식시장에서 알파 찾기라는 내용으로 글을 풀어나가면서 K주식이라는 주제로 한국 문화의 뛰어난 역량이 기업의 글로벌 수출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내용과 다음으로 몇 년간 큰 부진을 겪다 턴어라운드 시기가 다가오는 K반도체에 대한 산업 얘기들을 주로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주식시장의 현재 위치와 흐름에 대해 짚어보고, 향후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간된 무라 가미 구니오의 주식시장 4계절 이론이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4계절은 금융장세(봄)→실적장세(여름)→역금융장세(가을)→역실적장세(겨울)→다시 봄으로 얘기되는데요. 최근처럼 역대급 경제 상황(코로나, 공급 병목, 전쟁, 고금리, 고물가 등)이 겹친 상황에서는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장의 흐름은 반복되기에 한 번 짚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일단 작년 초 경기상황을 복귀해보면 예상보다 물가가 잡히지 않자 금리 인상 기조가 강화됩니다. 즉 금리 상승이라는 역금융장세(가을)가 시작되면서 주식시장의 하락세가 본격화됩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쇼크가 나타나는 역실적장세(겨울)를 겪게 되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은 경기 침체 우려로 급락했습니다. 올해 들어 상반기 기업들의 실적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각국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점진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주식이 먼저 상승하는 금융장세(봄)가 시작되었습니다.
금융장세의 특징은 실적이 동반되지 않고, 향후 물가와 금리가 하락함에 따라 기업 실적이 바닥을 찍고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미리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하고 특히 금리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의해 고성장 종목들의 주로 시장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정 종목과 업종에 쏠림 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되고요. 올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금융장세의 대표적인 업종이 2차전지 관련 종목이었고, 2차전지 내에서도 특정 기업에 더욱 쏠림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유망한 기업들로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밈(MEME) 현상이 나타나고요. 그리고 이러한 주도주를 투자하지 못해서 생기는 포모(Fear Of Missing Out)까지 동시에 나타나면서 주도주의 강세가 더욱 강해지는 시장의 흐름이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투자의 4계절상에서 이미 금융장세(봄)에서 실적장세(여름)으로 계절의 변화가 빠르게 오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여전히 Sticky(끈적거리는)한 물가흐름이 그 이유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30~40년 만의 역대급 레벨의 물가 상승이었기 때문에 물가지수가 하락하더라도 여전히 레벨이 높기 때문이고, 임금상승 등의 구조적인 물가 상승 요인 역시 물가를 빠르게 낮추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게 되고요. 글로벌 소비 수요 회복 속도 역시 느려지면서 예상보다 긴 금융장세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금융장세가 길다고 실적장세가 오지 않는 것 아닐 것입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각 업종의 재고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고요, 기업마다 다르지만 투자 역시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과점산업에서 공급이 제한된 업종의 경우에는 효과가 조금 더 빨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업종에서 최근 연말까지 제품별로 일부는 정상 재고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재고가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기업들의 실적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뿐만이 아니라, 신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하고 신제품 판매를 위해서 기업들의 광고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축소되었던 투자가 늘어나고, 고용이 조금씩 회복되는 선순환이 나타납니다. 선순환이 나타나면 여러 기업의 실적이 회복되는 실적장세가 나타나고요, 주식시장은 여러 업종에서 분산되어서 상승하는 본격적인 실적장세로 돌입합니다.
물론 현재 경기 상황상 갑자기 경기가 좋아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상반기 보다는 더 많은 기업들의 실적이 점차 회복되고 있고, 특히 재고의 특성상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에서 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미국 주식시장과는 다르게 고용과 투자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에 금융장세에서 미국 주식시장보다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실적장세가 시작되면 제조업 위주의 한국 시장이 연말로 갈수록 미국 시장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보통 실적 장세에서는 금융장세보다는 투자할 수 있는 종목과 업종이 크게 늘어납니다. 업종순환매 흐름도 많이 나타나고요. 그래서 지수 역시 강한 하방경직성을 갖고 꾸준하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 관련 종목들의 저가 매수 전략도 유효하구요. 과도하게 저평가된 종목들도 반등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특정 업종 집중투자보다는 좀 더 종목을 다양하게 가져가는 분산 투자 전략도 나쁘지 않습니다. 또한 여러 시장 참여자들이 만족할만한 수익률을 얻게 되고, FOMO 현상이 완화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생각해보면 향후에는 좀 더 다양한 업종에서 투자 기회를 찾고, 소외되어 과도하게 저평가된 기업들도 다시금 공부를 해봐야 하는 시기로 판단하면 어떨까요?
위대한 기업도 너무 비싸게 사면 투자 수익률이 높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산업과 기업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습니다. 실적장세에는 금융장세보다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투자 포인트를 점검해보면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게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