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5일 15:2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추진 중인 재원산업이 최대주주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새 국면을 맞았다. 대형 투자자들이 투자 출사표를 내 흥행 기대를 모았지만, 회사는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프리IPO에서 높은 기업가치가 인정될수록 상속세 시가가 높게 반영된다는 계산에서다. 아직 승계 구도가 뚜렷하지 않고 경영권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원매자도 다수 있어 매각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차전지 소재기업 재원산업은 삼일회계법인을 주관사로 선정해 프리IPO에 나섰다가 최근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4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원매자들을 접촉해왔다. 최대 2조원 몸값을 기대했다.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어펄마캐피탈 등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6~7곳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해 주목받았다.
투자유치 작업이 멈춘 건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고(故) 심장섭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부터다. 심 회장은 지난 7월 18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최대주주의 사망으로 유족들은 재원산업 경영권 지분 25.54%를 상속받게 됐다. 부인 전영자 씨(8.00%)를 비롯해 심재원 재원산업 대표이사(17.46%), 심성원 여수탱크터미널 대표이사(17.70%), 심수정 씨(12.72%) 3남매가 나눠가지게 된다.
재원산업은 비상장사인데다 아직 공식적으로 주식 가치를 평가받은 적이 없어 상속세 산정이 모호한 상황이다. 이번 프리IPO는 상속세 시가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비상장사의 경우 상속개시일 전후 6개월 이내로 매매사례 가액이 나오면 그 가액을 시가로 본다. 유족 입장에선 프리IPO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수록 상속세 시가가 높게 평가돼 불리할 수 있다.
상속세 규모는 최소 수백억 원에서 최대 1000억원대 수준이 거론된다. 주식담보 대출과 배당금, 지분 일부 매각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이 경영권을 승계할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재원산업은 차기 경영권을 이어갈 확실한 승계 구도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고령인 전영자 씨와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심수정 씨를 제외하면 심재원 대표와 심성원 여수탱크터미널 대표가 승계 가능성이 있다. 지분 편차가 크지 않다. 심성원 여수탱크터미널 대표가 심재원 대표보다 0.24%포인트 더 앞서는 수준이다. 업계에서도 차기 후계자로 지목하는 인물이 뚜렷하지 않다.
프리IPO에서 경영권 매각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유력 거론된다. 실제 경영권 매각으로 새로운 거래구조를 제안한 원매자가 나온 상태다. 예비입찰에 참여한 대형 PEF 운용사 외에도 대기업 몇몇도 재원산업 경영권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매각 의사는 현재로선 크지 않다. 재원산업은 프리IPO를 마친 후 1년 뒤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나설 계획이었다. 당장은 지분을 매각할 적기가 아니라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비교적 부담이 적을 때 상속세부터 확정한 뒤 프리IPO를 재개할 경우 지금처럼 입찰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재원산업은 2차전지공급 사슬 망이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다. 2차전지 투자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갈지 장담할 수 없다.
1986년에 설립된 재원산업은 30여년 넘게 석유화학 제품 합성·정제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공정용 세정제를 제조해온 회사다. 전라남도 여수에 정제설비를 갖추고 있다. 2021년엔 반도체 극자외선(EUV) 공정에 쓰이는 핵심 원료 중 하나인 프로필렌글리콜메틸에테르 아세트산(PGMEA) 상용화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고객사로는 삼성SDI를 중심으로 LG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 등이 있다.
작년 매출 2855억원, 영업이익 141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386억원, 151억원이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