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방 조달 시장 규모가 1년에 540조원에 달하는데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0.3%에 불과합니다. 우방국에 충분히 개방된 시장인데도 한국 기업의 이해가 부족한 탓이죠.”
오는 15일 <미국 국방부 조달규정 번역집>을 발간할 예정인 김만기 KAIST 경영대 교수(62·사진)는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은 국내 처음으로 미 국방부 조달규정(DFARS) 전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DFARS는 미국 국방부가 발주하는 공공조달 사업과 관련한 모든 법률적 조건과 절차를 정리한 미 정부의 공식 규정집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방위산업 기업을 어느 수준까지 보호하며 해외 기업엔 어느 범위까지 시장을 개방하는지 등의 내용이 모두 기재돼 있다. 미국 방산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지만, 1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원문이 영어로 기술돼 있어 국내 중소기업이 DFARS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 방산기업이 폴란드 등에서 뛰어난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은 폴란드도, 우크라이나도 아닌 미국”이라며 “우크라이나전쟁 이후에도 한국 방위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미국 국방 조달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서방국가 대부분이 미국 DFARS를 참고해 자국 국방 조달 규정을 마련했기 때문에 DFARS를 정확히 이해하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국방 조달시장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18년 KAIST에 ‘국제입찰&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IGMP)’을 개설한 김 교수는 국제 공공조달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1994년 호주 정부를 상대로 통신 자재 등을 납품하기 시작한 그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미 국방부의 소프트웨어(SW) 공공조달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A) 범정부 태스크포스(TF)’의 민간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업이 해외 공공조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해당 국가의 조달 규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2019년 미국 조달시장과 관련한 개괄적 지침서 성격의 <국제입찰Ⅰ 미국 연방정부 및 주정부 조달>을 펴냈다. 2021년엔 국방부를 제외한 미국 연방정부에 적용되는 ‘연방조달규정(FAR)’ 전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미국 연방조달규정 번역 및 해설집>을 발간했다.
김 교수는 “FAR 번역집 발간 이후 국내 방산업계에서 DFARS도 번역해달라는 문의가 쏟아져 2년에 걸쳐 이번 번역집 작업을 했다”며 “국가 재원을 받아 번역 작업을 한 만큼 전국 방산 관련 연구소, 미국 진출에 관심 있는 기업, 주요 도서관 등에 책을 무료로 배포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