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는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에 힘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밀고 있는 핵심 종목 중 하나다. 세계 최고 상금을 자랑하는 경마대회 ‘사우디컵’에 내건 상금만 2000만달러(약 26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운영비 등을 더하면 4000만달러 넘는 돈이 투입된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박을 금지하는 사우디가 경마에 큰돈을 쓰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야구 축구 농구 골프에 버금가는 경마의 세계적인 인기와 시장 규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미국 3대 경마대회 중 하나인 켄터키더비의 시청률이 ‘슈퍼볼’에 이어 2위를 기록한 게 단적인 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멜번컵’ 경마대회 당일을 아예 공휴일로 지정한다.
사우디 미국 호주 등이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경마 전쟁’에서 한국마사회가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다. 4일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경마 콘텐츠 해외 매출은 489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2021년 연간 실적(518억원)을 6개월 만에 낸 셈이다. 작년 상반기(401억원)보다는 18% 증가했다.
‘K경마’ 중계를 사들이는 국가가 빠르게 늘어난 덕분이다. 2019년 8개국(정기 수출국 기준)에서 지난해 22개국으로 3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럽(영국 프랑스 등)과 동남아시아(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북미(캐나다), 오세아니아(뉴질랜드) 등 지역도 다양하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수출국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마가 해외에서 통하는 이유로 ‘사계절 경주’를 꼽는다. 마사회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사계절 내내 경주하는 국가는 몇 곳 없다”며 “경마대회가 없을 때 한국 콘텐츠를 사려는 국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마는 베팅하는 시스템인 만큼 신뢰도가 높아 조작 가능성이 작은 국가의 콘텐츠를 찾기 마련”이라며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데다 K팝 덕분에 국가 이미지가 높아진 것도 K경마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정상적인 경마 개최가 어려웠던 마사회는 수익 다변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빠르게 해외로 눈을 돌렸다. 경주 실황 수출을 ‘5대 말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마케팅을 펼쳐왔다. 마사회 관계자는 “해외 사업 및 외화 획득을 통해 경마의 산업적 가치를 재조명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해외 시장에서 한국 경마 상품 가치와 인지도 제고를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개막하는 국제경마대회 코리아컵(1800m)과 코리아스프린트(1200m)는 ‘K경마’의 핵심 콘텐츠다. 한국 경마는 세계 경마 2부리그 격인 파트2로 분류되고 있으나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만큼은 높은 인기 덕분에 예외적으로 1부리그급 경주(IG3)로 분류돼 열리고 있다.
올해는 두 경주의 총상금이 지난해(20억원)보다 10억원 오른 30억원으로 증가하면서 해외 명마들이 앞다퉈 도전장을 냈다. 한국 경주마들이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린 작년과는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일본의 ‘크라운프라이드’. 켄터키더비와 사우디컵, 두바이월드컵 등 세계 최고 무대를 모두 경험한 최정상급 마필이다.
크라운프라이드를 포함해 일본이 4마리를, 홍콩이 2마리를 내보낸다. 마사회 관계자는 “지난해 코리아컵과 스프린트가 열린 하루에만 해외에서 우리 경마 투표권을 구매해 발생한 총매출이 350억원 규모”라며 “올해는 지난해를 훨씬 웃도는 매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