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올 2분기)이 0.7명으로 역대 최저다.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 그래도 서울 도심에서 주말이면 엄마·아빠 손을 잡은 미래의 동량(棟梁)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 있다.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지하 교보문고다. 책장을 넘기는 고사리손에서 희망을 본다. 문 연 지 40년이 지났으니 이 서점 복도에 주저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추억이 있는 중장년층도 많을 것이다.
교보문고엔 5대 운영지침이 있다.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한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이것저것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앉아서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훔쳐 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등이다. 어린 시절 폐병에 걸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던 교보생명 창립자 대산(大山) 신용호의 뜻이 담겨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보문고 표지석 글귀는 대산의 얘기이기도 하다. 16세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약 3년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는 ‘천일독서(千日讀書)’는 향후 그가 사업을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대산은 1936년 약관(弱冠)의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곡물사업 등을 펼쳤고, 해방 후 귀국해 출판, 염색, 제철사업 등을 하다 1958년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창안하며 대한교육보험을 설립했다.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고객을 만나 설득했다. 이후 30년간 교육보험을 통해 학자금을 받은 300만 명은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대산은 “25년 이내에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사옥을 짓겠다”는 창업 당시 약속대로 1980년 교보빌딩을 완공했다. 도심 금싸라기 땅 지하에 상가를 내게 해달라는 민원이 쇄도했고, 직원들도 만류했으나 서점을 들여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읽게 하겠다는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대산의 20주기 추모 전시회가 지난 1일 장남인 신창재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교보문고에서 열렸다. 30일까지 전시가 계속된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 위대한 경영인이자 교육가로 평가받는 그의 발자취를 느껴보면 어떨까.
류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