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여름 극장가, 이번 추석에는 다를까요 [김소연의 엔터비즈]

입력 2023-09-02 07:35


관객수는 늘었지만, 한국영화를 찾는 사람은 줄었다. 야심 차게 진행된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고 알려진 영화 '밀수'도 500만 관객을 돌파한 정도다. 1년 중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여름 블록버스터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면 1000만 관객은 가뿐하게 돌파했던 코로나19 이전 상황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표다. 엔데믹 이후에도 한국 영화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역대급 징검다리 휴일'라는 말이 나오는 추석 연휴를 겨냥해 기대작들이 쏟아지면서 한국 영화가 여름 시장의 아픔을 만회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CJ CGV가 지난달 30일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영화시장 관객수는 5839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했다. 2017~2019년의 상반기 평균 관객수인 8330만명과 비교하면 70% 수준을 회복한 수치다. 다만 한국영화 점유율은 36%에 그쳤다. 이는 2017~2019년의 한국영화 관객수 점유율 평균 57% 보다 낮은 수준이다. '범죄도시3'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그 뒤를 잇는 흥행작은 나오지 못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500만 관객을 넘긴 건 '범죄도시3'와 '밀수'가 유일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코픽)가 21일 발표한 '2023년 7월 한국영화 산업 결산'에서도 한국 영화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7월 전체 매출액은 1400억원으로 2017~2019년 7월 전체 매출액 평균 1730억 원의 80.9% 수준을 회복했지만, 한국영화 매출액은 31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52.1%에 해당하는 343억원이 감소했다. 7월 한국영화 관객 수 역시 지난해 7월 대비 47.7% 감소한 333만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7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한 2004년 이후 7월 가운데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7월 한국영화 매출액 점유율과 한국영화 관객 수 점유율은 각각 22.6%, 23.3%에 그쳤다.

코픽은 "올해 1~7월 누적 기준 전체 흥행 1위 영화인 '범죄도시 3'를 제외하면 올해 1~7월 사이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같은 기간 기준으로 매출액 200억원, 관객 수 200만명을 넘긴 한국 영화가 없었을 정도로 한국영화 부진이 계속됐다"며 "한국영화 누적 관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시기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팬데믹 기간을 포함하고 있는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한국영화 누적 매출액과 관객 수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영화의 빈자리는 외화가 채웠다. 7월 외국영화 관객 수 역시 지난해보다 10.3% 증가한 1095만명으로, 2017~2019년 7월 외국 영화 관객 수 평균(1582만명)의 69.2%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디즈니·픽사 '엘리멘탈'은 7월 전체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이어갔다. 1000억 전쟁 블록버스터 가고 한가위 대전 온다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 등 국내 4대 투자배급사가 올 여름 성수기 시즌에 선보인 텐트폴 작품들의 제작비를 합하면 1000억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 중 익분기점을 넘긴 건 180억원의 제작비를 쓴 '밀수'가 유일하다. 올해 추석 시즌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오는 27일 나란히 맞대결을 펼치는 영화 '1947보스톤'은 190억원,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는 113억원, '거미집'은 96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여름 텐트폴 작품까진 아니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졌고, 유명 감독과 배우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47 보스톤'은 이미 2020년 1월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와 주연 배우 배성우의 음주운전으로 개봉이 미뤄지다 인제야 관객들을 만나게 된 작품이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기정 선수와 그의 제자 서윤복 선수의 감동 실화를 전한다. 앞서 '비공개작전'으로 흥행의 쓴맛을 본 하정우가 손기정 역을 맡았고, 임시완이 서윤복을 연기했다.

'천박사 퇴마연구소'는 배우 강동원이 극을 이끈다.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베테랑', '엑시트', '모가디슈', '밀수'까지 연이은 흥행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제작사 외유내강의 새 작품이다.

'거미집'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춘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다섯 번째 협업으로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장르도 개성도 확연히 다른 세 편의 영화가 맞붙는 만큼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추석 극장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의 선택 기준도 까다롭고 냉정해진 만큼 이들 영화 중 어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특히 영화 티켓 비용이 상승하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가 있어야 본다"는 관객들이 늘어났다. 스타 파워, 물량 공세로는 흥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 중 어떤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지켜볼 일이다.

CJ CGV 조진호 국내사업본부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관객들의 영화 선택이 까다로워지고, 눈높이도 높아졌지만 볼 만한 콘텐츠가 개봉하면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영화 흥행을 주도하는 세대와 연령대의 폭이 넓어지고, 콘텐츠별로도 세분화되고 있다"고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