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퇴임을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이 “지난 6년은 첩첩산중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연현상을 불러왔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6년간의 임기를 “첩첩산중”이라고 표현했다. 김 대법원장은 “산을 넘어도 산이 있고, 그 산을 넘어도 또 산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면서 “그럼에도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로는 형사전자소송 도입을 꼽았다. 김 대법원장은 “민사소송 전저화는 2010년부터 시작됐지만 형사소송은 여전히 종이기록을 바탕으로 진행돼왔다”면서 “첫번째 공판에서 서류를 복사하지 못해 재판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국민들에게 큰 편익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026년에는 형사전자소송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갈수록 심화되는 재판 지연현상의 원인을 두고는 “매년 신임법관을 예상보다 적게 뽑으면서 법관이 사건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경력법관이 일반 배석판사로 들어오게 되면서 법원 구성이 변하면서 (판사도) 일반 직장인처럼 사명감과 열정만으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는 등 복합적 요인들이 섞이면서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법원이 추진 중인 법관증원법을 통해 법관 숫자를 늘려야 재판 지연을 막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연에 영향을 미쳤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법관이 승진이란 제도가 있을 때는 성심을 다하고 없어지면 그렇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장 추천제 때문에) 이제는 법원장이 재판을 독려하기 어려워졌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지방 법관도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역량을 갖춘 인물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관해선 “(임기 동안) 6070회를 구성했고 113건의 판결을 내렸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미루는 일 없었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판결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의미가 컸던 판결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판결, 장남이 아니어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다는 판결 등을 꼽았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 임기 동안 전원합의체 구성을 통해 친노동 성향의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대법원의 정치 편향 논란을 두고는 “한때 여성 대법관이 네 명까지 있었을 정도로 대법원 구성원 다양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 “비판을 받은 건 의식해야 하지만, 편향적인 대법관을 제청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후임자로 지명된 이균용 후보자를 두고는 “지금 시점에 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이 후보자가 (지난달 23일) 방문했을 때도 축하한다는 말과 청문회 무사히 잘 마치라는 이야기 정도만 했다”며 말을 아꼈다. 이 후보자 지명된 뒤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던 ‘사법부 신뢰 회복’에 대해선 “나 역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로 말한대로 잘 진행해서 뜻했던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임기를 마친다. 그를 대신할 차기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이 후보자는 현재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이다. 청문회 이후 국회 동의를 받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정식 임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재적 국회의원의 과반이 출석해 출석한 의원 중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