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성(60) 지휘자가 임기를 9개월이나 남긴 상황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자리를 내놨다. 다른 오케스트라로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천시와의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공립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이적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자진 사퇴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2일 클래식 음악계에 따르면 장윤성은 지난 7월 말 사표를 제출했고, 부천시는 한 달 만인 8월 25일 수리했다. 이로써 2021년 6월 부천필 제3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장윤성은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부천시가 밝힌 퇴임 이유는 '서울대학교 교수직 복귀'다. 부천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 휴직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상임지휘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라며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결정”이라고 했다.
장윤성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해외 공연, 음반 녹음, 단원 채용 등의 사안에서 부천시,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과 지속적으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교수 복귀는 시기적으로 맞물렸을 뿐 사퇴의 직접적 계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장윤성은 “울산시향, 창원시향, 대전시향 등 국내 유수 지자체 악단들을 이끌어봤지만 부천필처럼 번번이 상임지휘자의 주장이나 제안이 무력화되는 곳은 처음"이라며 "예산이 적은 건 백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기관과 악단의 발전을 도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장윤성은 지난해 부천필이 오스트리아 출신 현대 작곡가 헤르베르트 빌리가 한국인의 ‘정(情)’을 주제로 쓴 작품을 잘츠부르크에서 세계 초연할 기회가 있었으나 부천시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했다. 앞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연이 예정됐을 만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2년 넘게 지속 요청해온 단원 채용 건도 번번이 반려됐고, 전임 지휘자 시절 네 차례 이뤄진 음반 녹음 건도 그의 임기 때에는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공연의 경우 부천필을 세계 무대에 알리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힐 좋은 기회였다. 이를 위해 필요 예산의 3분의 2가량을 몇몇 기업으로부터 후원받기로 약속까지 받았지만, 부천시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며 “악단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른 요청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긴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부천시는 그간 상임지휘자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여건상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천시 관계자는 “해당 안건 모두 추가 예산이 필요한 사안이었기에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해외 공연의 경우 코로나19 시기에 논의되던 사안이기에 예산뿐 아니라 시기상으로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음반 녹음, 단원 채용 건은 최근 진행할 여건이 마련됐는데, 상임지휘자가 사퇴를 결정한 탓에 성사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제한된 돈으로 여러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시의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외 공연, 음반 녹음, 단원 채용처럼 오케스트라의 대내외적 발전을 위한 일에 제동이 걸려선 곤란하다”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