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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가 70억유로(약 10조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 패키지 법안을 내놨다. 기업 투자를 촉진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취지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 주요 경제기관들은 독일이 올해 선진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0일 도이체벨레(DW)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 연립정부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연간 70억유로의 법인세를 깎아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감세안에 (연정 참여 정당들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성장기회법(Growth Opportunities Law)’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초 독일 연정이 60억유로 규모의 세금 감면안을 계획했으나 액수가 늘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앞으로 4년간 시행될 이 법으로 누적 320억유로의 법인세가 감면될 것으로 예상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 ‘슐로스 메세베르그’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정부 워크샵 첫날 성장기회법을 포함한 10가지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슐로스 메세베르그는 독일 연방정부의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성장기회법은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미텔슈탄트(중소기업)’를 대상으로 한다. 주로 첨단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직원 수가 500명을 넘지 않고, 매출액이 5000만유로(약 718억원)에 못 미치는 미텔슈탄트들은 독일 전체 기업 중 99% 이상을 차지한다.
독일 정부는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을 제공하고, 연구?개발(R&D) 촉진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또 신규 주택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새 감가상각충당금 계정 도입 등 지원책이 포함됐다. 독일 경제부에서 제안한 전기요금에 대한 보조금 지원안은 적시되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장기간 지속되는 보조금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숄츠 총리가 제안한 10가지 정책 중 성장기회법을 제외하면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전기차와 탈탄소, 반도체 등 분야에서의 신규 투자를 지원하는 2120억유로 규모 ‘기후 및 변환 기금’은 이미 발표된 내용이다. 독일 정부는 또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도입을 확대해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 워크샵에서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숄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부양책을 달성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독일 경제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경기 침체에 대응하고 성장을 촉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독일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올해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다. 이 나라의 2분기 실질 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0%로 정체했다. 독일의 경제 성장률은 이미 지난해 4분기 ?0.4%, 올해 1분기 ?0.1% 후퇴하며 기술적 경기 침체로 들어섰다. IMF는 올해 독일의 연간 성장률을 ?0.3%로 예상했다.
경제 부양책의 내용과 규모 등을 두고 연정 참여 정당들이 수 개월간 내홍을 겪은 탓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한 상태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독일인 69%는 현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포르사(FORSA) 조사에선 응답자 63%가 “숄츠 총리의 리더십이 약하다”고 답했는데, 직전 조사인 4월(51%)보다 비율이 커졌다. 응답자 61%는 “연정 간 세력 다툼에 지쳐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다”고 반응했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선 현재 연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중도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각각 1, 2위를 달리고 있다.
친기업 성향인 자유민주당(FDP)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이 초여름께 제시한 감세안에 대해 녹색당 소속 리사 파우스 가족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연정은 심하게 분열했다. 이날 공개된 감세안은 주요 쟁점이 됐던 아동 복지 예산 등과 관련해 가까스로 합의가 이뤄진 결과였다.
독일 정부는 이미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책정한 상태다. 내년 보조금 총액은 671억유로로, 2021년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대부분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쓰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감세안으로 연방정부와 주(州)정부,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26억유로, 25억유로, 19억유로의 세수 부족이 초래될 전망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