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찰이 공통으로 들고 있는 장비 중 하나가 경찰봉이다. 1800년대 영국이 런던 경찰에게 처음 경찰봉을 지급한 뒤 미국과 프랑스 등으로 퍼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포졸에겐 육모방망이가 있었고 요즘엔 호신용 경봉(삼단봉)과 경찰봉을 쓴다. 그러다 2004년 8월 장비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 두 명이 노고산동에서 전과 10범의 강력범을 잡다가 숨진 것. 칼을 휘두른 강력범에게 경찰봉으로 맞서다 변을 당했다.
경찰은 이를 계기로 ‘테이저건’ 수입을 결정했다. 5만V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달린 침 2개가 동시에 발사된다. 맞으면 바로 5초 동안 기절한다. 현재 1만3786정이 지구대 등에 비치돼 있다.
도입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테이저건 사용 횟수는 많지 않다. 앞서 선배들이 경험한 몇몇 사건 때문이다. 2010년 5월 인천 부평 주택가에서 술주정을 부리는 남성에게 경찰이 테이저건을 쏜 일이 있다. 칼을 들고 있는 남성과 1시간 대치 끝에 발사했다. 불행히도 이 남성은 쓰러지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칼에 옆구리를 찔려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손에 든 칼에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직무상 불법행위를 인정해 282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래서 경찰은 ‘도심 칼부림’이 일어나도 테이저건을 꺼내지 못한다. 지난 26일 서울 은평구에서 40㎝ 칼을 들고 소란을 피운 정모씨와 2시간40분 동안 대치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테이저건 대신 소주와 치킨을 사다주며 정씨를 설득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내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저위험 총을 모든 경찰에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위험 총은 경찰의 주력 총기인 ‘38구경 리볼버’ 대비 살상력이 10분의 1 수준이다. 사람의 몸을 관통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경찰에선 벌써부터 ‘제2의 테이저건’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그동안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뒷감당’이 무서워 사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적극 대응에 대한 면책이 없다면 “테이저건이나 저위험 총이나 쓸모없긴 마찬가지”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김우섭 사회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