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나랏빚 줄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입력 2023-08-29 17:52
수정 2023-08-30 08:53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든 위기는 빚에서 나온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마찬가지’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빚더미를 미래 세대에 넘겨선 안 된다고 본다.

내년 예산안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기재부가 짠 내년 예산안에서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 대비 2.8%다. 우리 예산 편성에 총지출 개념을 도입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내년 명목 경제성장률이 4~5%대는 될 것이라고 보면 경제 성장 속도보다 재정지출 증가율을 낮춘 긴축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내년 재정지표는 올해보다 더 나빠진다.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는 올해 58조원에서 내년 92조원으로 불어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6%에서 3.9%로 악화한다. 기재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법 통과 이전에도 이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지키지 못한 것이다. 재정적자가 커지다 보니 국가채무도 올해 67조원에 이어 내년에 또 62조원가량 늘어난다.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 침체로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예산 대비 33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출을 조금만 늘려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급격히 불어나는 것이다.

추 부총리도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돌려봤다고 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로 할 때, 올해보다 약간 개선된 2.5%로 할 때, 균형예산을 위해 0%로 할 때 내년 지출이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는 후문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결과는 각각 -0.6%, -4%, -14%였다. 어떤 경우든 내년 지출 예산을 올해보다 줄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모두 선택하기 어려운 해법이었다고 한다.

한 예산 당국자는 “한 번 늘어난 나랏빚을 줄이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했다. 내년 예산을 짤 때 베이스가 되는 올해 예산이 이미 커질 만큼 커져 있다 보니 내년 예산 증가율을 조금만 높여 잡아도 재정적자가 급증하고,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깎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다. 재정 여건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전 정부 책임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본예산 기준 총지출을 연평균 8.7% 늘렸다. 추가경정예산까지 포함하면 연평균 증가율은 12.2%에 달했다. 이른바 ‘슈퍼 확장재정’을 반복했다. 관가에선 “돈이 너무 넘치다 보니 정부가 돈 쓸 곳을 제때 찾기 힘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사이 재정엔 빨간불이 켜졌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 국가채무는 660조원에서 1068조원으로 400조원 넘게 불어났다. 김대중 정부 85조원, 노무현 정부 165조원, 이명박 정부 180조원, 박근혜 정부 170조원에 비해 증가 폭이 월등히 컸다. 한 번 불어난 빚은 눈덩이가 구르는 것처럼 지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지난 정부를 거치는 동안 36%에서 49.6%로 뛴 데 이어 올해 50.4%, 내년 51%로 높아질 전망이다. 지금 고삐를 죄지 않으면 금세 60%, 70%를 넘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독일, 영국 같은 기축통화국이나 준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국가채무 비율이 가파르게 오르면 국가신용등급이 흔들리고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때 가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랏빚을 줄이려면 늦는다. 고통도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다. 과거 재정위기를 겪은 남유럽과 남미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