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제주 서귀포시 삼달리에 사는 현순직 할머니(97)가 해녀로 물질한 기간이다. 만 일곱 살에 시작해 94세 때인 2020년에 은퇴한 최고령 해녀다.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현 할머니(촬영 당시 89~94세)가 거주하는 삼달리 해녀촌을 비춘다. 해녀들의 일상을 현 할머니와 삼달리 최연소 해녀 채지애(34~39세)를 중심으로 밀도 있게 그렸다.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물숨’(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현 할머니는 해녀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고래 상군’이던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바다에 나섰다. ‘모전여전’이라고 했던가. 물질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는 16세에 베테랑 해녀를 의미하는 ‘상군 해녀’가 됐다.
그는 독도 강화도 완도 등 전국 바다를 헤치면서 세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아들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테왁(해녀가 물질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 기구)과 그물망을 짊어지고 바다에 나선다.
현 할머니는 후배 해녀들과 제작진에게 젊을 때 자주 갔다는 들물여의 ‘물꽃’(분홍색 산호인 밤수지맨드라미)을 전설처럼 들려준다. 삼달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데다 조류 변화도 심해 물질에 능한 자신만 갈 수 있었다고 현 할머니는 말한다. 그곳에는 물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전복 소라 등 해산물이 넘쳐났다고 했다.
채지애는 해녀인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육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바닷소리로 들릴 만큼 향수병이 심해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 반대를 무릅쓰고 해녀가 됐다. 촬영을 시작할 무렵 그는 물질을 시작한 지 1년8개월밖에 안 된 ‘아기 해녀’였다. 촬영이 끝날 무렵인 2021년에는 능숙한 상군 해녀가 됐다.
현 할머니는 “저 아이가 제일 마음씨가 곱다”며 채지애에게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들물여의 물꽃을 찾아가기로 의기투합한다. 두 해녀의 여정은 영화가 끝나기 20분 전부터 시작된다. 들물여 인근까지는 현 할머니와 채지애가 같이 가지만 바다에는 채지애만 들어간다. 그는 현 할머니가 그 옛날 봤던 물꽃을 만날 수 있을까.
잘 만든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제주 바다와 풍광을 담은 영상과 두 해녀의 인터뷰, 사람 간 대화로 구성된다. 해설하는 투의 내레이션은 없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인생을 생각해볼 틈을 준다.
제주 해녀는 ‘달의 시간’으로 산다고 한다. 물때를 따라 움직이는 해녀들은 달의 모습을 보고,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작을 때 바다로 나간다. 고 감독은 그래서 바다 위 달의 모습을 카메라에 자주 담았다고 했다. 영화는 달빛이 비치는 제주 바다로 시작해 현 할머니가 달이 뜬 바다를 바라보는 광경으로 끝난다. 이런 말과 함께.
“달은 기울었다가도 때가 되면 다시 차는데 사람은 한번 다하면 그만인가. (…) 부모가 그만큼 물려줄까. 저 바다가 잘도 고맙지. 부모보다 더 고마워.”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