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87’ 같은 여객기는 앞이 둥글다. 왜 전투기처럼 뾰족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플라잉>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담은 책이다. ‘우리를 날게 한 모든 것들의 과학’이란 부제를 달았다. 저자는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비행기 덕후’다. 학창 시절부터 블로그에 비행과 과학에 관한 글을 써온 그는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비행기에 관한 과학을 설명한다.
여객기 코가 둥근 이유는 공기저항 계수가 가장 낮기 때문이다. 둥근 정도에 따라 0.05~0.1 정도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은 0.17로 오히려 더 높다. 저자는 이를 ‘형상저항’과 ‘점성저항’으로 설명한다. 형상저항은 물체 모양에 의해 발생하는 저항이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우산을 활짝 펴고 걷는 것보다 반쯤 접고 걷는 게 편한 이유다.
공기도 다른 유체처럼 끈끈한 점성이 있다. 물체 표면에 달라붙어 물체와 함께 움직이며 저항을 만들어 낸다. 자동차 표면에 붙은 작은 먼지가 빠른 속도에도 떨어지지 않는 게 바로 점성저항 때문이다. 점성저항이 자동차 표면에 공기층을 만들어 바람이 먼지를 털어내는 걸 막는다.
뾰족한 비행기 코는 형상저항에 유리하다. 접은 우산과 같다. 대신 길어진 코는 표면적을 늘린다. 더 많은 공기가 달라붙어 점성저항이 높아진다. 반면 둥근 코는 형상저항은 불리하지만 짧고 뚱뚱한 덕에 점성저항을 줄일 수 있다. 엔지니어들이 여러 차례 실험한 결과 공기 저항이 가장 작은 모양으로 앞부분을 설계한 결과가 지금의 여객기 모습이다.
의문이 남는다. 그럼 전투기는 왜 앞부분이 뾰족할까. 음속을 돌파할 땐 또 다른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통 비행기는 공기를 밀어내며 날아간다. 전투기는 공기의 벽과 맞부딪친다. 속도가 너무 빨라 공기가 뒤로 밀려나기도 전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럴 때 충격파 저항이 생기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뾰족코를 달게 됐다는 설명이다.
책은 비행기가 날 때 구름이 생기는 이유, 왜 비행기 꼬리를 뾰족하게 만드는지, 여객기 엔진이 점점 크고 무거워지는 이유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대중을 겨냥한 과학서지만 제법 깊이 있고 탄탄한 과학 지식을 전달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