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PEF·헤지펀드도 공모펀드처럼 규제한다

입력 2023-08-22 18:03
수정 2023-09-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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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모투자펀드(PEF)·헤지펀드 운용사와의 전면전에 나선다. 운용사의 펀드 정보 공개 의무화 등을 통해서다.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사모펀드업계를 겨냥해 대대적인 규제 도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번 규제안은 미국 기관투자가의 투자금을 유치한 해외 운용사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사모펀드업계는 SEC를 상대로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수수료, 보수 등 공개해야SEC는 “23일 PEF, 헤지펀드 운용사에 관한 규제안을 최종 의결한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해당 규제안은 기본적인 자료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해 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그간 상장기업, 뮤추얼펀드 등에 가해 온 규제·감독을 대체투자업계에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SEC는 작년 2월 처음 초안을 공개한 뒤 업계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1년여 만에 최종안을 의결하기로 했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PEF·헤지펀드 운용사는 투자자에게 분기마다 펀드 성과와 수수료, 비용, 보수 등의 세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공해야 한다. SEC가 자산평가 추정치를 점검할 수 있도록 매년 감사도 받아야 한다. SEC는 “운용사들이 일부 투자자에게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이면 계약을 맺는 것을 방지하고, 불투명한 운영 방식을 토대로 고객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던 관행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로펌 모건루이스의 크리스틴 롬바르드 변호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도입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이후 금융투자업계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안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특히 사상 처음으로 기관투자 분야에서 SEC가 운용사와 투자자 간에 어떤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PEF 및 헤지펀드의 총운용 자산은 25조달러(약 3경3000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SEC 위원장, 개인 철학 작용이번 규제안엔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의 개인적인 철학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겐슬러 위원장은 지난 5월 매니지드펀드협회(MFA) 행사에서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부에서 일했을 때 겪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CTM) 사례를 언급했다. 미국 대형 헤지펀드 LCTM은 러시아 루블화 채권을 기반으로 차익 거래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LCTM 펀드도 붕괴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번질까 우려한 미국 중앙은행(Fed)은 14개 은행과 함께 3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LCTM의 보고 요건이 부족해 해당 디폴트의 시스템적 영향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SEC 상대 소송 준비펀드업계는 이번 규제안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기존 계약에 관해 면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업계에 역대급 혼선을 빚을 것이란 지적이다. 투자자들과 맺은 수만 건의 계약을 12개월 내에 파기하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우려다.

그간 펀드매니저들의 운용 책임에 명시돼 있던 ‘중과실’ 조항을 ‘과실’로 강화한 것도 향후 운용사들의 운신 폭을 좁히고 결국에는 수익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 대체투자관리협회의 잭 잉글리스 최고경영자(CEO)는 “SEC의 월권행위”라며 “투자계약 판매자(펀드 운용사)와 구매자(기관투자가) 간 계약의 자유에 관한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FA는 규제안과 관련해 SEC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뉴욕=박신영 특파원/김리안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