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구매하기 위해 쓰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부터 갤럭시 S23, Z플립·폴드5 같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 AP를 100% 적용하면서다. 퀄컴 의존도가 높아지고 가격 협상력이 약해지다보니 AP 구매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 AP ‘엑시노스’의 성능을 끌어올려 내년 출시할 예정인 갤럭시 S24(가칭) 시리즈에선 퀄컴 비중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원재료비 18%가 AP 구매비용22일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디바이스경험(DX)부문의 올 상반기 모바일 AP 매입액은 5조7457억원에 달한다. 모바일 AP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모뎀칩 등을 통합한 반도체다. 스마트폰에 탑재돼 두뇌 역할을 한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애플의 ‘A’ 시리즈, 삼성의 엑시노스 등이 널리 알려진 AP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 매입액은 2021년 7조6295억원, 지난해 11조3790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엔 지난해의 절반을 넘어섰다. 스마트폰 출하량은 감소했지만 AP 매입 비용은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올 상반기 DX부문의 전체 원재료 매입액(32조4846억원) 중 모바일 AP의 비중은 17.7%에 달했다. 퀄컴 AP 의존도 높아져모바일 AP 매입액이 늘어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AP 개당 가격이 상승한 것이 꼽힌다. AP에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가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비용이 올라가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AP 가격이 약 30% 올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가격 협상력 저하’도 비용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은 작년까지 갤럭시 프리미엄 폰의 AP로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와 퀄컴의 스냅드래곤 등을 함께 썼다. 예컨대 한국 미국 중국엔 퀄컴, 유럽과 남미엔 엑시노스를 적용한 갤럭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식이었다. 삼성전자는 ‘큰손 고객’이란 점, 엑시노스로 퀄컴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지렛대 삼아 퀄컴과의 가격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갤럭시 스마트폰의 성능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이후 삼성 프리미엄 폰에 들어가는 엑시노스 AP 비중이 점점 줄더니 올해 출시된 갤럭시 S23, Z플립·폴드5엔 퀄컴 AP만 들어갔다. 삼성 내부에선 퀄컴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달라는 대로 AP 값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MX사업부가 최종 결정내년부터 다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 다. 삼성전자가 내년 1분기 출시할 예정인 갤럭시 S24 일부에 엑시노스 AP를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S24 일반 모델엔 엑시노스, 플러스·울트라엔 스냅드래곤을 넣거나 지역별로 칩을 다르게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엑시노스 성능 강화와 AP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사업부의 최첨단공정 수율 향상 등이 AP 구매 전략 변화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AP 개발을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는 AMD 등과 협력해 그래픽 성능 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파운드리사업부의 최신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 비율)은 최근 TSMC와 비슷한 수준인 75%까지 올라왔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