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채권은 없어서 못 사죠. 대신에 애플·아마존 채권삽니다."
2001년 10월. 삼성전자는 회사채 시장에서 5000억원을 조달했다. 이 회사는 그 후 22년 동안 한국 회사채 시장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100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보유한 만큼 굳이 자금을 빌릴 유인이 없어서다. 이 회사 신용등급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과 맞먹는다. 그만큼 채권 매니저들의 관심도 크다. 이런 삼성전자가 돌연 연 50%에 육박하는 금리로 대출을 받으면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초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배경은 무엇일까.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현재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Aa2(안정적)로 평가했다.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무디스가 평가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같다.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AA-(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위에서 네 번째로 높은 등급이며, 한국 국가신용등급(AA)보다는 한 계단 낮다.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으로 최고등급(Aaa)을 부여했다. S&P는 미국 등급을 한국과 같은 AA로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신용등급은 1997년 발행한 만기 30년의 양키본드(미국 국적이 아닌 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발행하는 달러표시채권)를 통해 부여받았다.
국가 신용등급에 필적하는 신용도를 갖춘 삼성전자지만 이례적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의 튀르키예(옛 터키)법인(SETK)은 지난해 11월에 BNP파리바를 비롯한 은행들로부터 2644억원을 연 48.2%로 조달했다. 만기는 1년 6개월이다. 삼성전자 튀르키예생산법인(SETK-P)도 BNP파리바 등으로부터 지난해 11월 134억원을 연 29.6% 금리로 빌렸다. 삼성전자 본사는 두 법인에 9070억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제공했다.
삼성전자가 이 같은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튀르키예 거시경제 여건과 맞물린다. 튀르키예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 25.0%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 24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25.0%로 7.5%포인트나 올렸다. 튀르키예는 치솟는 물가에 대응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튀르키예의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2%에 달했다. 올해 초에는 50%를 넘어섰다.
통상 대출금리는 빠르게 치솟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결정된다. 삼성전자 튀르키예법인도 이 같은 현지 금융환경을 고려해 높은 수준으로 산출된 것이다. 조달한 자금으로 튀크키예 설비를 구축하는 데 썼다.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튀르키예 통화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것과 맞물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6일까지 리라화 가치는 44.38%나 떨어졌다. 고금리를 고려해도 향후 보유한 원화나 달러로 환전해 리라화 차입금을 갚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폭락하는 리라화에 대한 환헤지(위험 회피)도 여의치 않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