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국내 금융기관의 산실인 여의도 일대를 ‘영어 친화 도시’로 바꾼다.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표지판에 한글 대신 영어를 먼저 쓰고, 영문 표준 계약서를 지역 부동산에 보급한다. 일반병원에선 외국인 환자들이 영문 문진표를 작성한 후 진료시 통역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20일 서울시와 영등포구에 따르면 두 지자체는 여의도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여의도동 22번지 일대)에서 이달부터 외국인을 위한 각종 생활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관광객이나 거주민을 위한 표지판이다. 기존에 있던 9개의 관광안내 표지판의 한·영 병기 체계를 영어를 먼저 쓰는 식으로 바꿨고, 4곳에 영문 우선 표기판을 추가로 설치했다. 한글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의 비중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부동산과 병원은 외국인들이 이용할 일이 많지만 언어소통으로 인한 고충이 큰 대표적인 공간이다. 서울시는 이달 중 영문 계약서와 문진표를 각각 지역 부동산과 일반병원에 보급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이같은 조치에 착수한 것은 여의도를 ‘글로벌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과 관련이 있다. 시는 지난 3월 여의도를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로 바꾸는 계획을 승인했다. 13년 전에 ‘금융특구’로 지정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고 본격적으로 외국인 투자가 집중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2027년까지 5년간 총 593억5700만원을 투입해 마포대교 남단에 ‘디지털금융지원센터’를 설립하고, 핀테크기업을 육성하고, 금융교육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번에 추진하는 영어 친화도시 관련 사업도 진흥계획의 하나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여의도를 외국 투자자를 위한 영어친화형 공간으로 변모시키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서울이 금융 투자자들을 모으기 유리한데도 싱가포르 등에 밀리는 이유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기 때문“이라며 ”핀테크 중심지가 될 여의도에서만큼은 영어로 일하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제금융지수(GFCI) 및 핀테크 순위에서 서울시는 올해 10위를 기록했는데 5년 안에 세계 5위권에 진입시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내달부터는 영문메뉴판용 태블릿PC를 일반음식점에 보급할 예정이다. 오는 10월부터 여의도 지역에 정차하는 모든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서 영어 안내방송을 재생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금융기관 외국인 전용 데스크 확대, 공공시설(우체국·주민센터 등) 영문 현판 제작 등 12개 사업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여의도역과 가까운 옛 MBC 부지(브라이튼여의도)에 영어친화 도서관과 영어 키즈까페 등도 조성하는 방안을 영등포구청과 협의 중이다. 영등포구청이 기부채납 형태로 소유하게 된 이 건물 지하와 지상2층에 각각 도서관과 키즈까페를 만들기로 했는데, 여기에 ‘영어’라는 테마를 추가하는 것이다. 다만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운영비(연 30억원 가량)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조율 중이다.
일각에선 ‘외국인 우대 정책’에 시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월 말 진흥계획 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과거처럼 외국인들에게 손짓한다고 해서 투자 유치를 더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국진 서울시 금융투자과장은 “비즈니스 하는 외국인들이 식당을 이용한다든가 회의를 한다든가 할 때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사업과 기업 유치 시 애로사항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최해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