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출근한 김대리, 회사 놀러왔어?"…옛날엔 왕이 입던 옷이에요!

입력 2023-08-17 18:37
수정 2023-08-24 17:13

지난 7월 초. 초복을 앞뒀을 때 때아닌 ‘반바지 논란’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에게서 시작된 이 이슈는 우리 사회의 반바지를 향한 거부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16년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대기업의 복장 자율화가 이어지며 반바지 출근이 허용됐지만, 지금도 일터에서 반바지를 입는다는 건 누군가에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오늘은 반바지 얘기다. 보이스카우트 소년복, 운동복, 혹은 휴가를 즐기는 한가한 사람의 옷이라는 반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지금은 반바지를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복장 규정이 완화됐고, 무엇보다 요즘은 ‘편안한 옷’에 대한 트렌드가 확산됐다. 반바지의 기나긴 역사를 알면 반바지를 멋지고 당당하게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너그럽게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반바지 스타일은 뭘까.귀족 남자들이여, 스타킹에 반바지만 입어라!
복장 규정은 사실상 뿌리 깊은 사회적 약속이다. 오늘날의 현대 복식은 영국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영국의 찬란한 역사·문화적 우위는 16세기 전후 튜더왕가의 헨리8세 때 그 절정에 달했다. 소비지상주의가 대두하고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면서 허울뿐인 빈곤한 상류층의 입지가 좁아지자 헨리8세는 후에 사치 금지령으로 알려진 제도를 만든다.

명목은 ‘과도한 사치를 금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이 제도는 계급에 따른 복장 규정이 돼 사회적 계급을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때 상류계급 남성들은 스타킹과 함께 매우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것이 요구됐다. 아마도 반바지의 위상이 이때보다 더 높았던 적은 인류 역사상 없을 것이다. 당시 반바지는 ‘입고 싶은 옷’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프랑스 혁명가들 ‘반(反)반바지’파 아시나요시간이 흐르고 프랑스대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귀족에게만 허락된 퀼로트로 불리는 반바지는 주도권을 잡은 이들에게 크게 미움을 사게 된다.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한 혁명당원들은 ‘상퀼로트(sans-culotte)’로 불렸는데 이는 우리말로 ‘반(反)반바지’파다. 노동 계급의 상징이자 득세하는 남성 과격 공화파에게 긴 바지는 새로운 권력과 남성성의 상징이요, 반바지는 타파의 대상이자 구시대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서양 아기들은 신생아 때는 길고 흰 치마를 입혔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치마의 길이는 자연스럽게 짧아지고 소년이 되면 반바지를 입었다. 그렇게 아직 성적 존재감이 없는 반바지 소년들은 어른으로서의 성징을 보이기 시작하는 10대 중반을 넘어서야 긴 바지를 입었다. 이렇게 반바지는 성인의 기준에 못 미치는 작은 아이들의 옷으로 정착됐다.해군 장교의 군복이 된 버뮤다팬츠 뜻밖에도 반바지는 그 실용성 덕분에 부활의 계기를 맞이한다. 캐러비안에 있는 버뮤다(맞다! 뭔가 자주 실종된다는 그 신비의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반바지 부활의 작은 신호가 깜빡인다. 1800년대 초부터 버뮤다제도는 영국 해군의 북대서양 전초기지였다. 이곳의 유일한 찻집 주인이던 너새니얼 콕슨은 무더운 날씨에 타이를 매고 재킷과 긴 바지까지 입고 일하던 점원들의 불평을 덜어주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돈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시원한 복장을 연구하다 점원들의 바지를 무릎 아래로 댕강 잘라버리기로 한 것이다.

1차대전 당시 이곳 찻집의 단골이던 해군 제독 메이슨 베리지는 긴 양말에 무릎이 살짝 보이는 반바지, 타이와 재킷을 차려입은 이곳 점원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해군 장교들의 제복에 이 바지를 도입했다. 이후 더운 지역에 나가 있는 영국군 전체에 반바지 제복이 적용된다. 물론 열대지역에 복무 중인 병사들은 이미 군복을 잘라 작업복으로 활용하고 있었지만 상위 계급자들의 정복에도 버뮤다식 반바지가 적용됐다는 점에서 버뮤다 반바지는 의미심장했다.우아한 헤밍웨이도 즐겨 입은 반바지룩
반바지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쉽사리 득세할 순 없었다. 195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여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반바지를 금지하는 기록을 남긴 바 있다. 같은 해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급증하는 반바지의 인기를 언급하면서도 고급 호텔, 유명 스포츠클럽에서는 반바지 착용이 금지되고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의 남성복과 여성복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디자이너 하디 에이미즈는 1964년 발간돼 여전히 남성복의 바이블로 받아들여지는 그의 저서 <남성 패션의 ABC(The ABC of Men’s Fashion)>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종종 취향의 기준을 무시하는 원인이 된다’며 반바지를 꼭 찍어 비판했다.

“해변이나 도보 여행 중이 아니라면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

기준 미달, 혹은 온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의 반바지(shorts)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명의 발달과 함께 극도의 사치를 향하던 인류는 이제는 격식을 내려놓고 점점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추세. 아름다운 옷을 즐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대세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넉넉한 핏,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적당한 길이, 그리고 조금 짙은 색상의 반바지라면 보수적인 꼰대 부장님도, 매일 “라떼는~”을 운운하는 우리 사장님도 조금 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왕실의 공식 초상화에서 늘 반바지만 입고 있던 헨리8세가 “야! 나 때는 반바지만 입었어~”라고 외칠지 모르겠다. 이 뜨거운 여름이 가기 전에, 사냥과 낚시를 즐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헤밍웨이처럼 멋지게 반바지를 입어보자.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