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및 증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형적인 내우외환에 직면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수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에 빠지고 있어서다. 미국 국채 금리가 뛰면서 원·달러 환율은 가파른 상승세다. 국내 증시의 단기 향방은 중국 부동산과 환율, 채권 움직임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5년 만의 최고'로 뛴 美 국채 금리
미국의 장·단기 국채 시장이 심상치 않다. 16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08년 6월 이후 15년 만의 최고치인 연 4.28%까지 치솟았다. 전날 대비 7%포인트 뛰었다. 2008년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시점이다.
이날 공개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미 중앙은행(Fed)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확인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음달 20일로 예정된 차기 FOMC에서 기준금리 동결 확률이 높지만 “장기간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시장 컨센서스가 강화됐다.
의사록에서 Fed 위원들은 “물가 상승률의 상방 위험이 유의미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동기 대비 3.2%로, 시장 예상치(3.3%)를 밑돌았으나 전달(3.0%)과 비교하면 되레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4.7%로, Fed의 목표치(2%)보다 두 배 넘게 높은 상태다.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 발행 물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재무부 발표도 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국채 물량이 늘면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는 뛰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국채 금리의 변화를 추종하는 TLT·TMF 등 상장지수펀드(ETF) 가격도 추가 하락세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한국 경제엔 작지 않은 부담이다. 글로벌 자금이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로 쏠릴 수 있어서다. 한국 내 자산 시장이 덜 주목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고점 찍은 원·달러 환율
미 국채 금리 상승과 함께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다. 17일 오전 달러당 1343원을 또 돌파했다. 올해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높은 기준금리가 장기간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달러 강세를 유도하고 있다.
다만 유로·엔·파운드 등 6개 상대 통화와 비교한 달러인덱스는 103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달러인덱스는 작년 9월 114에 육박,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었다.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가 유독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상승)는 수출 기업들의 수지를 개선해줄 요인이지만,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엔 긍정적이지 않다.
中 부동산 급랭과 위안화 가치 하락
중국 부동산 시장 급랭 및 경기 악화는 국내 증시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 1위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은 헝다그룹 사태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헝다그룹은 2년 전 부도 위기에 몰리며 증시와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비구이위안의 부동산 프로젝트 규모가 헝다의 4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파장은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비구이위안의 총부채는 작년 말 기준 1조4000억위안(약 255조원)에 달한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 금융당국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위안화 환율은 아시아 역외 시장에서 역대 최저치(작년 10월의 달러당 7.38위안)에 근접해 있다. 위안화 투자 심리가 매우 위축됐다는 의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최근 시장 예상을 깨고 유동성 확대에 나섰으나 환율 불안만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자금이 더 안전하고 수익률까지 높은 미국 국채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공격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펴야 하지만, 위안화 가치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거꾸로 움직여온 시장, 이번엔?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으나 국내외 증시의 하락장이 본격화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동안 나쁜 뉴스가 호재로 작용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 직후 기업 실적이 곤두박질 쳤으나 유동성 확대 기대로 글로벌 증시는 역대급으로 반등했다. 중국 경기 악화가 정부의 적극적인 부양책을 유도할 것이란 낙관론도 나온다.
경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국제 유가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는 점도 위안을 주는 요인이다. 유가가 안정을 되찾으면 인플레이션 재상승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내려왔다. 이달 초 배럴당 84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중국의 경기 지표가 부진하게 나온데다 미국에서도 긴축 가능성이 제기됐던 덕분이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소비국이다.
시장은 국내외 증시에 영향을 끼칠 향후 이벤트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5일 단기 정책 금리를 전격 인하했던 중국 인민은행은 오는 21일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 7월 CPI가 마이너스를 기록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걱정이 커진데다 부동산 시장에선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시장의 비관론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미국에선 다음달 20일 FOMC를 앞두고 오는 이달 24~26일 잭슨홀 미팅이 열린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기준금리 정책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작년 잭슨홀 미팅에선 “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로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