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57)는 지난달부터 밑반찬으로 내주는 상추 양을 줄였다. 한 번 나갈 때 5장씩, 리필 요구는 받지 않는 식이다. 최근 상추 가격이 너무 올라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됐기 때문.
김씨는 최근 상추 4㎏을 9만원 후반대에 구입했다. 평년 2만~3만원에 비해 최대 5배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김씨는 “손님들이 야박하게 여길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지만 재료값이 너무 올라 부담이 크다”며 “상추를 달라고 하면 대신 깻잎을 더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마와 폭염, 태풍 피해로 먹거리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식당 인심이 팍팍해지고 있다. 밑반찬 가짓수는 물론 각종 서비스도 축소하거나 유료로 바꾸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요즘엔 한 푼이라도 줄이지 않으면 가게 유지를 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1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은 지난달 대비 줄줄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이달 첫째 주 배추 10kg 도매 가격(상품 기준)은 1만6171원으로 한 달 전(5649원)보다 약 186% 상승했다. 무 20kg 가격(상품 기준)도 2만997원으로 지난달 초(1만30원)에 비해 109%가량 높아졌다. 장마철 직후 이어진 전례 없는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식당들은 앞다퉈 반찬과 메뉴를 교체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우육면집을 운영하는 40대 사장 황모 씨는 ‘공짜 오이 반찬’을 없앴다. 원래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에게 기본으로 나가는 찬이었지만 이제는 1000원씩 내도록 안내문을 붙였다. 오이는 올해 집중호우로 값이 한 달 만에 3~4배씩 뛰어오른 채소 중 하나다. 황씨는 “밑반찬에 비용을 물리냐고 놀라는 단골손님도 있다. 하지만 오이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며 “오죽하면 값을 매겨 팔겠냐”고 씁쓸해했다.
셀프서비스였던 김치·단무지를 배식제로 바꾸는 것도 식당이 비용 절감을 위해 쓰는 주된 방법이다.
경기 고양에서 갈비탕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박모 씨는 ‘김치 셀프바’를 없앴다. 갈비탕집에서 김치를 양껏 먹지 못하게 됐다고 핀잔을 주는 손님들도 있지만, 가게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게 박 씨 설명이다.
‘반찬 무한 리필’에 익숙한 한국인의 특성상 다 먹지도 못할 만큼 퍼 가서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추가 요청을 할 때마다 번거롭지만 조금씩 더 가져다주는 방식이 낫다는 얘기다. 박 씨는 “갈비탕집 특성상 김치 맛이 중요해 수입산을 쓰지도 못한다”며 “김치 담그는 가격이 감당이 안 돼 당분간만 셀프바를 치우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 여파가 아직 농산물 가격에 다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11일 기준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농지는 여의도 면적(290㏊)의 5.4배에 달하는 1565.4㏊로 집계됐다. 기상악화에 따른 공급 불안 외에도 9월 말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몰리면 먹거리 가격은 더 뛸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마가 끝나면서 채소 가격 오름세가 살짝 꺾였지만 추석 연휴 수요가 늘면 가격이 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