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있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 정부에서 추진된 6·25전쟁 종전협정을 통한 유엔사 무력화 시도를 차단하는 동시에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며 “유엔사는 ‘하나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히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국제 연대의 모범”이라고 강조했다.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의 재남침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됐다. 유사시에는 별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없더라도 유엔 회원국들이 군사력을 지원할 수 있는 장치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 있는 유엔사의 후방기지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 협상이 추진되면서 이 같은 유엔사가 해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6·25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되면 유엔사는 존립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윤 대통령이 유엔사 확대를 통해 한·미·일뿐만 아니라 자유주의그룹과 연대해 대북 억제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유엔사 강화를 위한 행보를 취해왔다. 10일 유엔사 주요 관계자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간담회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에는 유엔사 회원국인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이 참가한다. 유엔사는 전부터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해 왔지만 한·미 발표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하반기 서울안보대화 시점에 맞춰 처음으로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들과 다자 회의도 열 계획이다.
미국도 이 같은 유엔사 강화에 호응하고 있다. 단순히 대북 억제를 넘어 중국 및 러시아 견제 등 동아시아 안정을 위해 유엔사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유엔사 참여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엔사를 통한 한·미·일 군사훈련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국내의 정서적 거부감을 의식해 지난해 3월 당선인 시절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1차적으로는 대북 억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미국은 유엔사가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