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시 커푸어(국제갤러리), 요시토모 나라(페이스갤러리), 데이비드 살레(리만 머핀)….
요즘 국내 주요 갤러리는 다음달 초로 계획한 특급 아티스트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때(9월 6~9일) 열리는 세계 양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중 하나인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방문차 한국을 찾는 글로벌 ‘큰손’ 컬렉터를 잡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이름 있는 갤러리가 전부 다 유명 작가 전시회만 여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갤러리인 학고재는 이름이 덜 알려진 두 명의 젊은 작가 작품으로 해외 컬렉터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얼마 전 시작한 이우성(40)과 지근욱(38) 전시회를 프리즈 서울-KIAF가 끝난 뒤인 9월 13일까지 열기로 한 것. ○학고재가 선택한 ‘韓 미술의 미래’
전시장에서 만난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프리즈 서울을 한국 미술 발전의 도약점으로 삼으려면 이미 다 아는 해외 거장 작품을 소개할 게 아니라 실력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를 알리는 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고재가 이우성과 지근욱을 택한 것은 그래서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라는 칭호를 얻은 작가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우성은 서양 회화 기법에 한국 전통 이동식 벽화인 ‘걸개그림’을 섞어 새로운 퓨전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물화에 집중했다. 작품 속 인물은 모두 자신의 지인과 주변 작가들이다. 이우성은 모델이 될 사람을 한 명씩 설득해서 캔버스에 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폭 6m, 높이 2m 크기의 대작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2023)이다. 작가 자신과 열세 명의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딸까지 한데 그렸다. 특이한 건 캔버스의 재료다. 거대한 벽화 같지만 얇은 천에 그린 덕분에 장소를 이동할 수 있는 걸개그림 형태다. ○인물화·추상화에 ‘사랑’을 담다지근욱은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파동을 그린다. 붓이 아니라 색연필을 든다. 홍익대 판화과를 졸업한 그는 캔버스 위에 얇은 색연필로 직선과 곡선을 그어 파동을 시각화한다. 작업 과정은 수행에 가깝다. 철공소에서 주문 제작한 쇠자를 대고 색연필로 선을 긋는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100호짜리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순수 작업 시간만 60시간이 넘는다. 지근욱은 이런 작업으로 2017~2018년 크리스티 홍콩 정기 경매에서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지근욱도 이번 전시를 위해 폭 8m, 높이 3m의 대형 작품을 내놨다. 제목은 ‘교차-형태’(2023). 15개의 캔버스에 수많은 선을 긋고, 이를 타원형 모양으로 모았다. 수천 개의 선이 만들어내는 장관은 마치 거대한 우주선이나 지구를 떠올리게 한다.
두 작가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지만, 밑에 깔린 메시지는 비슷하다. ‘주변에 대한 사랑’이다. 이우성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일상의 그림에 담았다. 수박 안에 얼음이 한가득 담긴 모습을 그린 ‘여기 앉아보세요’가 그런 그림이다. 누군가와 나눠 먹어야 하는 수박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표현했다. 지근욱은 인간이건, 동물이건, 사물이건 모든 물질의 근간은 파동이라는 점을 작품에 담았다. ‘인간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학고재는 KIAF에 부스를 차리고 두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우 회장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가장 큰 작가들을 골랐다”며 “해외 컬렉터들에게 이들의 작품을 자신 있게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두 전시 모두 9월 13일까지.
이선아/최지희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