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요즘은 점점 ‘빵심’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빵을 먹을 때 행복을 느끼고 빵을 먹으러 전국을 누비기도 한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의 한국 캠퍼스(숙명여대)에 매년 제과제빵을 배우려는 지원자가 늘고 있는 것은 이런 트렌드를 대변한다. 르꼬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 관계자는 “과거에는 직업교육 차원의 지원자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순수하게 빵과 디저트를 좋아해 심도 있는 기술을 배우려는 지원자가 늘었다”며 상당한 수준의 학비에도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 줄을 선다고 했다. 제과 과정은 6~9개월, 제빵은 3~6개월 기다릴 정도다.
2021년 필자가 신규 베이커리 론칭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평소 1주일 21식 중 5식은 빵을 즐겼던 나름 ‘빵돌이’였기에 쉽게 생각했었다. 빵덕후의 세계는 매우 심오했고 나의 깨달음은 하루 두 끼씩 한 달 넘게 빵과 함께 생활하던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빵, 한국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건강빵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차 주변 생활 패턴에서 우연히 답을 발견했다. 바로 제철음식과 지역 특산물이었다. 전국 맛집 투어 덕후이던 나는 언론매체나 SNS로 유명해지기 전의 맛집을 적극 탐색해서 찾아갈 만큼 부지런했다.
이런 덕질 경험은 빵집 프로젝트 첫 오픈 매장이 경북 경주지역으로 결정됐을 때 빛을 발했다. 대구·경북 제철음식과 지역 특산물 중 가장 유명한 사과를 베이커리와 접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석블랑제리와 약 6개월여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주방에서 합숙에 버금가는 생활을 해야 했다. 사과의 빨간 색을 내기 위한 방법, 사과의 크기와 모양에 맞는 베이킹 사이즈, 사과의 맛과 향을 빵에 담기 위한 방법 등을 찾기 위해 수십 번 테스트했다. 그렇게 특허등록까지 마치고 출시한 빵이 국내산 사과와 홍국미(米)를 활용한 ‘사과빵’이다.
덕질도 하나의 취향으로 존중받는 시대다. 최근엔 관심 있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디깅러(digging+er)’들의 공유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디깅은 자신이 아끼는 일과 가치라면 열정과 돈을 아끼지 않고 몰두하는 것을 의미한다. 덕질 문화가 이제껏 하위문화나 소수의 관심사에 ‘자기만족’을 위해 몰두하는 특징을 가졌다면 디깅러는 관심사를 적극 공유하고 확산한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지난해 가장 인기 있는 키워드를 꼽은 ‘유튜브 트렌드 2022’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한국 Z세대 응답자의 55%가 자신을 무언가나 누군가의 ‘찐팬’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덕질의 시대. 덕질이 직업이 되고, 직업이 나만의 콘텐츠가 돼 독창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