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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AMD는 미국 반도체업계에서 ‘만년 2인자’로 불렸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는 인텔, 인공지능(AI)산업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는 엔비디아보다 점유율이 낮아서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CPU 시장에서 인텔을 추격한 경험을 갖춘 AMD가 GPU 시장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무시할 수 없는 2인자
AMD 주가는 15일(현지시간) 111.35달러로 마감하며 올 들어서만 73%가량 상승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생성형 AI 열풍으로 최첨단 반도체인 AI용 GPU가 특수를 누려서다. 주력 제품 H100 등을 보유한 엔비디아가 GPU 시장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지만, AMD도 그 뒤를 이어 5%를 차지하고 있다.
AMD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GPU’라며 MI300X를 공개해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던졌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사진)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AI 칩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50%로, 올해 300억달러에서 2027년에는 1500억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MD는 이달 초 2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데이터센터용 AI 칩 부문의 연간 매출 가이던스(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AMD는 PC용 CPU와 게이밍 노트북·콘솔용 GPU 등을 설계 및 공급하고 있다. 설립 초기엔 인텔의 하청업체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며 성장했지만, 현재는 고성능 CPU와 GPU를 둘 다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회사로 꼽힌다. CPU 시장에서는 인텔, GPU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와 동시에 싸우는 유일한 기업이다. 2017년 선보인 라이젠의 선풍적인 인기 덕분에 CPU 시장에서는 인텔(68%)에 이어 2위 점유율(31%)을 확보하고 있다. ○‘경험치’로 GPU도 추격챗GPT 열풍 뒤 AI 개발에 필수적인 GPU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서 엔비디아의 H100 가격은 폭등했다. 이는 AMD에도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CPU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우수한 성능으로 인텔의 아성을 위협한 경험이 있는 만큼 AMD가 GPU 시장에서도 똑같은 전략을 구사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말 본격 출시 예정인 MI300X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대 192GB의 메모리를 장착해 H100의 120GB 메모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미국 온라인 투자정보 매체인 모틀리풀은 “엔비디아의 소비자 부문은 게이밍뿐인데, 이 부분의 최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8% 줄어드는 등 주춤한 상황”이라며 “AMD는 엔비디아보다는 AI에 덜 집중하고 있지만, 클라이언트(PC용 CPU)·게이밍 등 소비자 부문이 다양하게 구성돼 있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어 “AI 열풍으로 엔비디아 주가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AMD 주식에 투자해 AI 붐 수혜를 점진적으로 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즈호증권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AI 훈풍 덕분에 AMD도 혜택을 볼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140달러로 유지했다. 작년 2월 인수한 프로그래머블 반도체 기업 자일링스를 통해 맞춤형 첨단 칩 설계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 점은 AMD에 또 다른 호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단 GPU 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만큼 폭발적이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 분석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세계 칩 수요 가운데 AI 관련 부문은 아직 5%가 채 되지 않고, AI 칩은 앞으로 수년간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매출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며 “열풍에 비해 실제 활용 분야는 아직 미미하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