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사업을 왜 호텔이?"…다시 소환된 한화 삼형제의 승계 매직[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3-08-23 08:18
수정 2023-08-25 15:01
이 기사는 08월 23일 08:1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화가 미래 사업으로 육성하던 로봇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자 주주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미래 유망 산업으로 각광받아온 로봇 부문을 분사하면서 뚜렷한 연관이 없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지분 상당량을 넘기면서다.

분사하는 명분도, 사전 소통도 없다보니 한화 주주 사이에선 결국 대주주 일가 삼형제의 승계와 연계하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추후 유통부문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무의 신사업을 마련하기 위해 ㈜한화가 미래 먹거리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지난 11일 장 마감 후 2분기 실적발표와 로봇사업의 분사를 공식화한 뒤 급락하고 있다. 발표 직후 거래일인 14일 7.85% 하락한 데 이어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주가는 2만4800원으로 마감했다. 6거래일 동안 15% 떨어졌다. 2분기 연결 실적 부진이 원인으로 꼽혔지만 시장 일각에선 실적 발표와 동시에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화는 자사의 협동로봇·무인운반 사업을 신규 설립하는 자회사인 한화로보틱스에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자산을 모두 신설법인에 현물 출자해 지분 68%를 확보하고,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현금 210억원을 투입해 나머지 32%를 보유하는 조인트벤처(JV) 구조다.

한화의 로봇사업은 2015년 삼성그룹과의 방산-화학 빅딜을 통해 삼성테크윈의 협동로봇 생산라인을 넘겨받은 데에서 시작한다. 실적이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산업용 로봇시장에서는 HD현대그룹(현대로보틱스), 두산그룹(두산로보틱스)와 함께 ‘3강’으로 꼽혔다. 특히 핵심사업인 방산과 조선업을 운영하며 누적된 제조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꼽혀온 사업부였다.

주력인 호텔 사업과 사업적 연관이 적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이번 거래로 단숨에 2대 주주에 오르자 시장에선 JV 설립을 두고 의구심이 나왔다. 시장에선 그룹의 승계작업과 연관 짓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공식·비공식적으로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제조업,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삼남인 김동선 전무가 유통을 담당하는 독립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승계가 확정된 후 ㈜한화의 인적분할을 통해 세 형제가 각 분야별 계열사를 나눠 경영하는 방안이 재계에서 꾸준히 거론됐다.

유통업을 총괄할 김 전무 입장에선 사업 초기 밸류에이션 부담이 적을 때 유망사업인 로봇 사업의 주요 지분을 확보해 승계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국내에서 로봇사업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기 시작하면서 상장(IPO) 등을 추진하기도 적기를 맞았다. ㈜한화가 지분을 구주매출하는 방식으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최대주주가 바뀔 가능성도 열려있다.

시장 일각에선 과거 한화그룹이 ㈜한화와 계열사들의 자산을 세 형제의 개인회사인 한화에너지(옛 한화S&C) 계열로 이전한 전례도 거론된다. 승계 마중물이 될 한화에너지는 그룹 내 태양광 모듈 사업들을 일부 이관받아 연결기준 자산규모 11조원, 매출 3조9266억원의 초대형 회사로 급성장했다. 세 형제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에이치솔루션으로부터 확보한 배당만 2500억원에 달한다. IB업계에선 추후 삼형제가 한화에너지를 유동화해 ㈜한화 지분을 매집하거나 한화에너지와 ㈜한화를 합병하거나 주식 스왑하는 방식 등으로 승계를 마무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