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과회사의 특정 제품이 1년 중 가장 많이 팔린다는 11월 11일, 한 광고회사의 팀장이 자기 방에 팀원들을 불러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왜 나한테는 아무도 그 과자를 챙겨주지 않느냐. 누구도 나를 챙겨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며.
수년 전 본 한 신문 기사의 내용이다. 종종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진행할 때 이 사례를 들고는 한다. 그런데 직급이나 세대별로 이 기사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원·대리 등 일반 직원들은 한바탕 웃고 지나가는 반면, 임원급 직원들은 왜 다 큰 어른이 과자 타령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유독 팀장급 이상 중간관리자에게선 ‘남 일 같지 않다’는 연민의 눈빛이 읽힌다.
최근 관리자들을 상대로 한 사내 갈등 관련 강의를 준비하면서 받은 질문 중에도 “상급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없느냐”는 내용이 있었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면서 어디 말도 못 하고 속 끓이는 중간관리자가 많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행위자가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가질 것’이 주된 요건 중 하나다.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자로 상급자가 주로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위의 우위성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회사의 생산조직에서 상급자인 그룹장이 부하 직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봤음이 인정된 사안이 있었다. 그룹원 중 한 명의 잦은 조퇴를 제한한 그룹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그룹원 19명이 그룹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직원들의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시위를 했다. 그룹장에게 수시로 사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그룹원들이 수적인 우위, 즉 ‘관계’를 이용해 상급자인 그룹장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상급자라고 해서 항상 악역만 맡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 기관의 팀장이 새벽 6시26분에 소속 기관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고 부하 직원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 업무 지시를 한 사안에 대해, 법원은 팀장의 근무시간 외 연락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비록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근무시간 전이지만 인터넷 기사의 특수성, 신속한 보도자료 배포의 필요성 등에 비춰 볼 때 이른 시간 연락도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라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즉, 왜 근무시간 외에 연락했는지, 왜 특정 직원을 질책했는지, 왜 특정 업무를 부여 또는 부여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제3자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 가능한지가 중요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서는 특히 중간관리자들이 고민을 토로하는 사례가 많다. 위로는 실적을 압박하는 경영진을 상대로 차마 반발도 못 하고, 아래로는 혹여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비난받을까 싶어 탐탁지 않은 경우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관리자라면 직원들에게 과감히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직원들의 불만을 사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업무상 지도·감독 과정에서 ‘왜(Why)’를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준비된 관리자라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싶어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법제화된 취지는 근로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존중받으며 근로할 수 있도록 보호하겠다는 것이지, 업무상 필요한 지도·감독을 성심껏 다 하는 관리자를 제재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