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전쟁이 1년6개월 넘어서까지 진행 중이다. 대다수 군사전문가는 러시아의 압도적인 전력 우위로 인해 전쟁이 쉽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를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정보통신기술을 앞세워 드론과 위성통신, 해킹과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원거리 공격으로 반격을 가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무기가 돼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인지전(認知戰·Kognitive Kriegsfhrung)>은 또 다른 측면에서 최첨단 정보통신기술 시대의 전쟁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지난 7월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심리 조작 기술’이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소개한다. 거짓말과 선동 조작이 디지털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더욱 교묘하고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거짓 선동으로 번역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기업홍보(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책 제목이었다. 광고를 통해 대중의 심리를 조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버네이즈의 이론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더욱 견고해졌다.
나치 독일의 요제프 괴벨스 선전부 장관은 프로파간다 이론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행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심리전은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다. 책은 가장 진보된 형태의 심리 조작이 진행되는 심리전을 일컬어 ‘인지전’이라고 부른다.
레겐스부르크대 심리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자 프로파간다 연구자인 요나스 퇴겔 박사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직접 겨냥하는 인지전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한다. 오늘날 이미 소프트 파워 기술을 통해 사상 전쟁이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100여 년 전 심리전이 시작된 이후 신경과학의 군사화, 나노 로봇 발전, 신경 무기 발달, 미래 신기술 등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거나 인지적 혼란을 일으키는 전략 전술이 무차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2020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인지전의 정의, 개념, 군사작전 적용성을 담은 인지전 교리 문서를 공개하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진보된 형태의 전술’인 광범위한 심리 조작을 자행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정보통신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한 서방세계는 앞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인지전을 수행할 것이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 불안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인간의 판단 능력을 흐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그리고 소셜네트워크는 이런 인지전의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 전쟁 중인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 그리고 한국과 북한 사이에는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뿐 치열한 인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곳곳에서 전쟁이 치러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심리 조작과 거짓 선동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과연 진실은 존재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준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