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가 한여름 폭염 못지않게 우리 일상을 강타했다. 이름도 생소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가 문제가 됐다. 무량판(無梁板)은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 즉 대들보 없이 기둥으로 하중을 견디는 건축물 구조 형식을 말한다. 그런데 그 기둥 안에 보강 철근을 빼먹은 게 확인되면서 입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다행히 정부는 발 빠르게 대처했다. 찜통더위에 지쳐 있던 지난 8월 1일 발표한 대책을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우선 정부는 전국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를 전수조사해 그 결과를 최대한 빨리 발표할 계획이다.” 생략이 많으면 독자는 궁금해져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쓴 이런 표현은 어딘지 이상하다. 그냥 흘려 버리기에는 걸리는 데가 있다. ‘전국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전국에 민간 아파트가 그것밖에 되지 않을 리가 없으므로 이는 틀린 표현이다. 정확하게 쓰면 ‘2017년 이후 무량판 구조로 지었거나 짓고 있는 전국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이다. 이를 거두절미하고 ‘민간 아파트 293개’로 표현한 것은 ‘지나친 생략의 함정’에 빠진 결과다.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종종 발생한다. 필자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자신의 표현이 불충분한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독자는 드러난 표현만 가지고는 금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독자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쓰려면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음 글도 얼핏 보면 이상 없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오류를 안고 있는 게 보인다.
“에너지 절약 운동을 활발히 해 온 000 에너지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그는 서울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개정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공급자 위주로 글을 쓰다 보니 의미가 엉뚱하게 왜곡됐다. 시민단체가 조례를 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방의회에서 개정하게끔 뭔가를 했다는 것을 전달하려던 부분이다. 글쓴이는 내용을 알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생략이 많아지고, 이는 의미 왜곡으로 이어진다. ‘조례를 개정해’가 아니라 ‘조례 개정을 유도해’ 식으로 써야 한다. 성분 갖춰야 ‘독자 친화 주의’ 글쓰기글쓰기에서 ‘독자 친화 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수용자 관점에서의 글쓰기’를 말한다. 글을 읽고 나서 뭔가 궁금한 게 남으면 안 된다. 대부분 설명이 충분치 않거나 논리적 비약이 있을 때 그런 의문이 생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공급자 시각에서 쓰는 표현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개 문장성분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는 ‘리퍼브 제품 선호 현상은 경기 침체와 더불어 합리적인 소비 관념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장은 어떨까? 문장을 구성하는 성분을 갖추지 않아 비문이 됐다. 읽을 때 ‘합리적인 소비 관념의 결과’ 부분이 어색하다는 게 느껴져야 한다. ‘~선호 현상은’이 작은따옴표 안의 주어다. 그러면 ‘경기 침체와 합리적인 소비 관념의 결과’가 서술부를 이뤄야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명사구로 이뤄져 있어 서술어 기능을 하지 못한다. 어색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적절한 술어를 받쳐 줘야 한다. ‘경기 침체와 합리적인 소비 관념이 확산된 결과’ 식으로 문장성분을 갖춰야 글이 성립한다.
다음 문장도 성분 미비로 인한 비문의 사례다. 주어를 생략하면 안 되는 경우를 보여 준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려면 반드시 고용 지표의 회복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증시가 매달 공개되는 고용 성적표에 큰 영향을 받는 것도 미국의 경제·통화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뒷문장이 지나친 생략으로 인해 문장 완성도가 떨어졌다. 우리말에서 주어가 왕왕 생략되긴 하지만, 여기서는 문장에 힘이 빠지고 의미도 모호해졌다. 앞에서 ‘고용 지표’ ‘고용 성적표’ 등 일자리 관련 표현이 언급돼 있긴 하지만 문장 형식상 주어가 없어 구성이 엉성해 보인다.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일자리가 미국의 경제·통화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식으로 주어를 보강해야 문장이 온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