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호 태풍 ‘카눈’이 9일 밤 제주도에 상륙했다. 카눈은 1951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남해안부터 수도권까지 한반도 전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태풍이 될 전망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진로인 만큼 정부는 태풍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로 올리고 주민을 대피시키는 등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오늘 한반도 전체 영향권기상청은 이날 오후 9시 기준 태풍 카눈이 제주 서귀포에서 남동쪽으로 220㎞ 떨어진 지점에서 북상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태풍은 9일 밤 제주도를 지나 10일 오전 경남과 전남 경계 지역에 상륙할 예정이다. 이후 계속 북상해서 오후 9시께 서울 동남동쪽 40㎞ 지점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
박정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지리산 등 산악 지형을 거치면서 태풍의 진로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여러 예측 모델 모두 태풍이 수도권을 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한반도 상륙 시 카눈의 중심 기압은 965h㎩(헥토파스칼)로 예상된다. 작년 9월 경북 포항 등에 큰 피해를 준 ‘힌남노’(중심 기압 950h㎩)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심 최대 풍속은 상륙 시점 기준 초속 40m 내외의 ‘강’을 유지할 전망이다. ‘강’은 태풍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33~44m인 경우로 기차를 탈선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기상청은 태풍 강도가 충청 지역에 도달할 즈음엔 초속 20~30m 수준으로 다소 약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중’(초속 25~32m) 규모 태풍도 지붕을 날리고 나무를 넘어뜨릴 수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는 10일 오전부터 11일 오전까지 초속 15∼25m의 강풍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예보관은 “태풍이 지나는 남해 등의 해수면 온도가 27~29도로 평년보다 높아 태풍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양의 비도 예상된다. 제주와 전남은 10일 오전까지, 수도권은 10일 오전부터 11일 오전까지 비가 내릴 전망이다. 가장 많은 비가 예상되는 강원 영동 지역은 9~11일 사흘간 200~40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지역에서 600㎜ 이상의 비가 올 수 있다. 기상청은 수도권에는 100~200㎜, 경상도 지역에는 100~30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수도권 관통하는 첫 태풍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시기나 지나가는 경로는 그동안 우리가 겪은 다른 태풍과 크게 다르다. 평소보다 이르고 방향도 수직이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가장 더운 8월 초는 보통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기 힘든 시기라고 여겼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위에 자리 잡아 일종의 ‘태풍 보호막’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박 예보관은 “올여름엔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예년보다 약해지면서 카눈이 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카눈과 가장 비슷한 경로를 보인 태풍은 1989년 7월 발생한 제11호 태풍 ‘주디’다. 일본 규슈 지방을 거쳐 남해안에 상륙했고 내륙을 관통한 뒤 서해안으로 빠져나갔다. 당시 남해안 지역에는 300㎜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전국적으로 총 1192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9일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카눈 대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폭염 대비로 설치한 야외 그늘막, 옥외간판, 가로수 등의 고정·결박 여부를 긴급히 점검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 바닷물이 넘쳐 큰 피해를 본 창원시는 8일 마산구항 방재언덕에 설치한 차수벽을 시험 가동했다. 부산시는 침수피해 예방 차수판을 전진 배치했다. 지난해 힌남노로 아홉 명이 숨진 포항시는 재해 약자 590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울산시도 2016년 태풍 ‘차바’로 침수피해를 본 중구 태화시장에 분당 45t의 물을 퍼 올리는 대용량 방사포를 배치해 대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오후 6시를 기준으로 전국 도로 212곳을 사전 통제했다. 전국 둔치주차장 133개소의 출입을 막았고, 지리산국립공원 등 국립공원 21곳의 613개 탐방로와 해안가·물놀이장 107곳의 문을 닫았다. 중대본은 전날 태풍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중대본 2단계를 3단계로 상향했다. 국내선 항공기를 중심으로 결항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항공기 총 179편이 결항했다.
중대본은 출근 시간대인 10일 오전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됨에 따라 각급 행정·공공기관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유관 민간기업과 단체에도 상황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우섭/김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