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가 삼성전자에 자회사인 반도체 설계자산(IP)업체 ARM의 지분 일부 인수를 타진했다. 소프트뱅크는 ARM을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히면 상장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키를 잡고 있는 삼성전자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ARM의 가치가 고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투자에 따른 긍정적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돼서다. 업계에선 ‘거부하기 힘든’ 조건을 소프트뱅크가 제시해야 삼성전자가 지분 매입을 고려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설계도 밑그림 제공
9일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다음달을 ARM의 나스닥 상장 시점으로 잡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8일 “ARM의 상장 이후 시가총액은 600억달러(약 79조원)를 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의 기본 설계도인 IP를 개발하고 관련 특허를 팔아 수익을 내는 기업이다. 미국 퀄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등 대부분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가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더해 칩을 만든다.
ARM은 이 과정에서 수수료 수익을 거둔다. ARM의 2021회계연도 매출은 27억달러(약 3조5600억원)다. 이 중 로열티 매출은 15억4000만달러(약 1조9800억원)로 집계됐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투자 자회사인 ‘비전펀드’와 함께 2016년 320억달러에 ARM 지분 100%를 인수했다. 소프트뱅크의 경영 상황이 악화하자 손 회장은 2020년 9월 ARM을 엔비디아에 400억달러에 팔기로 했지만 최종 무산됐다. 이후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로 방향을 틀었다. 손 회장은 ARM 상장 과정에서 일부 지분을 삼성전자, 애플, 엔비디아, 인텔 등에 넘겨 주주로 영입할 계획이다. ○“과거보다 덜 매력적” 평가삼성전자는 ARM 일부 지분 인수에 대해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제시한 ARM의 시가총액은 최소 600억달러(약 79조원)다. 단순계산하면 지분 2%를 인수하는 데 1조600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 내부에선 지분 매입 여부에 따라 IP 수수료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굳이 투자해야 하냐’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ARM 기업가치가 2016년 소프트뱅크 인수 때의 320억달러에서 2023년 현재 600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87.5%) 증가한 게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ARM의 예상 시총에 최근 1년 매출을 적용하면 PSR(주가매출비율)은 22배 수준이다. 퀄컴(2.97배), AMD(7.75배), 브로드컴(10.97배)보다 ‘고평가’됐다.
ARM의 잠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업이 등장하는 것도 매력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최근 ARM의 IP가 아니라 무료 공개 IP ‘리스크파이브(RISC-V)’를 활용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칩 설계의 전설’로 꼽히는 짐 켈러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텐스토렌트가 대표적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급한 건 손 회장이고 삼성전자는 서두를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파격적인 조건이 나온다면 삼성전자도 지분 인수를 고려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